[레이안즈리츠] 연극
- 안즈른 전력 스물 두 번째 : [연극]-
연극
W. 소담(@kimiga_iru)
"....내가 이렇게 안즈 아가씨에게 얘기한 걸 알면 필시 리츠가 화를 낼 테지만, 그리고 아가씨로서도 이 늙은이에게 이런 이야길 듣는 게 괜한 오지랖처럼 느껴질 테지만, 너그러이 이해해주겠나. 어린 동생을 아끼는 형의 마음이라고 말일세."
레이는 여전히 개운치 못한 얼굴을 하고서도 고개를 끄덕인 안즈의 멀어져 가는 뒷모습을 복도의 창가에 기대어 가만히 응시했다. 계속 작아지던 그녀의 뒷모습이 모퉁이를 돌아 사라지고서도 그가 시선을 거두지 못한 채 멍하니 있는데 돌아보지 않아도 누군지 알 수 있을 목소리가 들려왔다.
"Amazing! 괜찮겠어요, 레이?"
친구의 익숙한 목소리에 놀란 레이는 근래에는 보기 어려웠던, 미간을 팍 찡그린 매서운 눈으로 그를 쏘아보았다.
"몰래 남의 대화를 엿듣다니, 언제 그런 나쁜 버릇이 생긴 게지?"
"오야, 1년 전의 레이를 보는 것 같아 반가운 걸요☆"
다른 사람들이었다면 압도될 법도 한 눈빛을 받고도 와타루는 그저 즐거운 듯 미소 지어 보일 뿐이었다. 그런 그의 싱글싱글 거리는 얼굴을 본 레이는 힘이 잔뜩 들어가 있던 표정을 풀고 한숨을 길게 내쉬곤 고개를 다시 안즈가 사라진 방향으로 돌려버렸다. 마치 와타루가 처음에 한 질문의 답을 피하려는 듯이.
"아직 당신과 동생 군에 대한 감정 사이에서 갈팡질팡하는 안즈 씨를 그렇게 동생 군 쪽으로 등 떠밀어줘도 괜찮겠어요, 레이?"
하지만 와타루는 생각보다 집요했다. 애써 그 질문을 회피하려는 레이에게 와타루는 문제를 하나하나 짚으며 되물었다.
".........무슨 소릴 하는지 모르겠네만. 아가씨는 리츠 그 아이에게 꼭 필요한 사람이라 생각하네."
레이의 답을 기다리며 그의 맞은 편 벽에 팔짱을 낀 채 기댔던 와타루는 레이의 대답을 듣고는 안즈가 갔던 방향으로 향했던 시선을 그에게로 돌렸다.
"그건 레이도, 마찬가지 아니던가요?"
핵심을 찌르는 말에 레이는 맞은 편에 있는 와타루를 쳐다볼 뿐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았다. 시끄러운 그의 행동과 말에 많이들 눈치채지 못하고 지나치는 부분이지만, 그는 정말로 눈치가 빠른 사람이다. 와타루는 자신을 바라보는 레이의 눈을 가만히 들여다보더니 이내 생긋 웃으며 현란한 동작으로 어디에선가 장미꽃 한 송이를 꺼내어 레이에게 내밀었다.
"이제껏 레이가 이토록 연극에 재능이 있는 줄은 몰랐습니다☆"
"연극이라.... 리츠나 아가씨에겐 아무 말도 하지 말아줬으면 좋겠구먼."
"우후후. 레이. 관객은 무대 뒤의 사정까지 알 필요가 없는 법이지요. 당신의 히비키 와타루☆ 당신의 연극에 함께 어울려드리지요!"
레이는 피식 웃으며 또 한 번 '연극이라...'하고 중얼거렸다. 여러 번의 고민과 결심 끝에 안즈에게 말을 꺼내놓고도 완전히 떨쳐내지 못한 미련인지, 레이는 다시 안즈가 간 방향을 잠깐 바라보았다. 당연하게도 이미 그녀는 없었다. 앞으로도 완벽한 '연극'을 하자고 다짐하며 레이는 와타루의 어깨 한 쪽을 지그시 한 번 주무른 후 그녀가 는 반대쪽 방향으로 걸음을 옮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