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水日] 최고의 짝사랑
굉장한 사골. N 블로그에 있던 옛날 옛적에 썼던 연성들 중 일부(라고 해도 거의 전부)를 백업 겸해서 올린다 :3
금색의 코르다, 시미즈 케이이치 × 히노 카호코.
2008.08.28 작성.
Sicilienne (자동재생, 반복재생)
처음이 어땠는지 사실 기억이 나질 않는다. 어쩌면 당연한 거다. 평소에도 정신 좀 차리고 다니라는 말을 주변사람들로부터 간곡히 듣고 있는 내 성격 탓도 있지만. 그때는 몰랐기 때문에. 내가 이렇게 그녀를 많이 좋아하게 될 줄 몰랐었기 때문에. 그때 그녀와의 만남은 다른 여느 사람들과의 시시한 만남에 불과했다.
최고의 짝사랑
W. 소담(@kimiga_iru)
그녀는 보통과의 2학년이었다. 그렇기 때문에 더욱 더 나와의 접점이 없었을 것이다. 나에게 말을 건 그녀는 자신도 콩쿠르의 참가자라며 난처한 듯 웃었다. 잘은 기억나지 않지만, 아마도 그때. 나는 그녀의 웃는 얼굴이 예쁘다고 생각했던 것 같다.
보통과의 사람이 콩쿠르에 참가한다기에 꽤나 실력 좋은 사람일 것이라고 내 멋대로 상상했었다. 고대하던 그녀의 음악은 곧 들을 수 있었다. 그녀는 성실한 사람이었는지 매일 같이 연습을 했고, 때때로 자고 있는 나의 귀로 그녀의 음이 들려오곤 했다. 사실 기대한 것에 비해 그녀의 연주 실력은 썩 좋지 못했다. 그렇지만 ‘기대 이하’는 아니었다. 아니, 어쩌면 ‘기대 이상’이랄까? 그녀의 연주는 확실히 기술면에서는 꽤 부족한 느낌이었다. 그러나 그녀의 연주엔 무언가가 있었다. 그게 뭐라고는 딱 꼬집어서 표현하기가 어렵다. 아무튼 나로서는 내지 못하는 그런 음이랄까.
그녀는 무척 다정한 사람이었다. 내가 길 위에 쓰러져 자고 있으면, 나를 걱정스러운 얼굴로 깨우며 길에서 잠들면 안 된다고 꾸중을 한다. 그녀의 꾸중은 듣기에 나쁘지 않다. 물론 그렇다고 그녀에게 꾸중 받고 싶다- 이런 것은 아니지만, 그녀의 꾸중에는 그녀만의 다정함이 어려 있다. 느낄 수 있다. 아마도 그래서 그녀의 꾸중이 듣기 좋은 것이었을 거다.
그녀의 음은 확실히 매력적이다. 나는 특별하지 않다면 특별하지 않은 그녀의 음에 매료되어갔다. 어디선가 그녀의 바이올린 소리가 들려오면 그 소리가 흘러나오는 곳을 나도 모르게 찾게 된다. 그렇게 그녀를 찾으면 그녀의 연주에 방해가 되지 않을 정도의 거리에 몰래 숨어 앉아서 연주를 훔쳐듣는다. 무언가가 있는 그녀의 연주는 마음을 편하게 해주었기에 연주가 후반부로 접어들 즈음엔 거의 음악에 도취되어 있곤 한다. 그녀의 음에 매료된 것은 비단 나만이 아닌 모양이다. 같은 보통과인 2학년의 츠치우라 선배도, 음악과의 2학년인 그녀와 똑같이 바이올린을 연주하는 츠키모리 선배도, 3학년의 트럼펫을 부는 히하라 선배도, 역시 3학년인 플롯의 유노키 선배도 그리고 나와 같은 학년인 후유우미도 확실히 그녀의 음을 좋아하는 듯 했다.
내가 연주를 하고 있으면 그녀는 가끔 소리 소문 없이 와서 나의 첼로연주를 듣는다. 그녀는 내가 연주하는 곡들 중에서 ‘시실리안느’를 가장 좋아하는 것 같았다. 그래서 당시에 내가 연주하는 곡이 끝나면, 그녀가 있는 것을 모르는 채 하며 시실리안느를 연주하곤 했다. 눈을 살짝 떠서 그녀를 쳐다보면 그녀는 눈을 감은 채로 나의 연주를 느끼고 있었다. 미소 띤 평온한 얼굴로 나의 템포에 맞춰 고개나 손가락을 까딱인다. 그러면 어쩐지 나는 조금 더 힘이 나곤 했다. 시실리안느의 연주가 끝나면 마치 꿈에서 깬 듯 눈을 떠서 그녀를 바라본다. 그녀는 자기가 방해한 것이 아니냐며 내게 미안하다고 늘 몇 번이고 사과한다. 그렇지만 나는 기쁘다. 그것도 무척이나. 왜냐하면 사실 그녀가 들어주었으면 좋겠다, 나의 연주를. 아직 미숙하지만 그래도 듣고 기뻐해주었으면 좋겠다. 같이 연주곡의 기쁨과 슬픔을 느껴주었으면 좋겠다.
그녀는 인기가 많은 사람이다. 그녀는 나와는 달리 성격이 싹싹하고 착하고 다정하다. 그래서인지 주변에 사람이 끊이지 않는 것 같다. 가끔 그녀의 음을 듣고 싶은 마음에, 그녀와 이야기를 나누고 싶은 마음에 그녀가 있는 곳을 찾아가도 꼭 누군가가 그녀의 주위에 있다. 그러면 나는 그저 지나가던 중인 것처럼 그녀와 그녀의 옆에서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 상대에게 인사를 한다. 그녀는 나의 인사에 반갑게 대답해주며 손을 흔들어준다. 그러면 나는 아쉽지만 그녀의 얼굴과 손을 눈에 새기고 조용히 퇴장할 뿐이다.
한번은 그녀에게 나의 연주에 대해 물었던 적이 있었다. 그녀는 얼굴을 약간 씰룩이며 고민하더니 이내 나의 연주는 무척 좋다고 칭찬해줬다. 그리고 그녀는 살짝 곤란한 표정을 지으며 ‘음, 그렇지만 시미즈 군의 연주는 뭐랄까. 음, 표현력이 부족한 느낌이야. 예를 들어 시실리안느는 우울한 느낌이라거나 애절한 느낌이 관건인데, 시미즈 군의 연주에선 애절한 느낌이 조금 부족한 것 같아. 아앗 절대 연주가 나쁘다는 게 아니야! 난 정말, 정말 시미즈 군의 시실리안느를 좋아한다고!’ 하며 곤란한 표정을 지으며 두 손을 힘차게 양 옆으로 흔든다. 강하게 부정하는 그녀의 대답에 나는 안도의 한숨을 작게 내쉰다. 그녀는 모르겠지만, 어느 날 부턴가 나는 연주를 할 때 그녀를 생각하게 되었다. ‘히노 선배라면 이 곡을 어떻게 연주할까?’, ‘히노 선배는 이 곡을 좋아할까?’, ‘어서 이 곡을 연습해서 히노 선배에게 들려줘야지’……
나는 그녀와는 다른 음악과의 학생이고 학년마저 다른 1학년이다. 그녀를 의식하게 된 이후부터- 그녀와 같은 과가 아닌 내가, 그녀와 같은 나이가 아니고 같은 학년이 아닌 내가 자꾸만 원망스러웠다. 츠치우라 선배는 같은 보통과 이니까 종종 복도에서 만나는 모양이다. 둘은 서로 아무렇지 않게 대화를 나누고 웃고 또 가끔은 싸운다. 선배와 복도에서 자주 마주칠 수 있다는 점이 부럽다. 츠키모리 선배는 같은 학년이고 같은 악기를 다루기 때문인지 가끔 보면 그녀가 츠키모리 선배에게 어느 정도 의지한다는 것을 느낄 수가 있다. 그녀에게 도움이 되고 어드바이스를 해줄 수 있고, 그녀의 목표가 될 수 있다는 점이 너무 부럽다. 히하라 선배는 다른 학년에 다른 과이지만 그, 특유의 좋은 성격으로 어디서 그녀와 만나도 그녀와 스스럼없이 얘기를 나누고 그녀를 즐겁게 해준다. 나도 그녀를 재미있고 즐겁게 해주고 싶은데…. 유노키 선배는 상냥하지만 강한 사람이다. 그를 좋아하는 여학생이 그녀를 곤란하게 만들면 그는 단 몇 마디의 말로 그녀를 지켜준다. 나도 그녀를 지켜주고 싶다.
즐거웠던 콩쿠르로부터 2년이 흘러 그녀는 졸업을 했다. 나는 후유우미와 함께 이제는 3학년이다. 봄의 졸업식 때 그녀에게 꽃다발을 건네며 마음속으로 정말 많이, 내가 그녀와 같은 학년이길 바랬다. 그렇지만 어쩔 수 없는거다, 이것은.
언제나 자유로웠던 히노 선배. 그래서 더 예뻐 보였던 그녀는 지금은 어떤 꿈을 쫓고 있을까? 남몰래 하는 듯이 보였던 짝사랑은 좋은 결말을 지은 것 같지만 가끔은 좋은 일에 웃고, 안 좋은 일에 속상해하며 울겠지.
나는 이런 내 기분을 잘 모른다. 그렇지만 후유우미 말로는 이런 건 ‘좋아하는 감정’이라고 한다. 나는 아마도 선배를 좋아하고 있는 것 같다. 아마도, 그것도 아주 많이. 그래서일까? 나는 선배가 연주하고 있을 바이올린 선율의 아름다운 흐름 속 어딘가에 내가 있길 바란다. 계속해서 그 따뜻한 음을 들을 수 있으면 좋겠다.
비록 히노 선배의 옆자리에 그녀의 기쁨과 슬픔을 나눌 수 있는 사람이 이제는 생겨버렸다지만, 그래도 그와 나눌 수 없는 기쁨이라거나 슬픔은 나와 나눠 주었으면 좋겠다. 나는 기쁘거나 행복하거나 슬프거나 우울할 때 그녀를 떠올리니까. 그녀도 조금이나마 나를 떠올려 주었으면 좋겠다.
히노 카호코. 당신에게 이 ‘시실리안느’를 바친다. 이제는 누군가에 대한 애절함이 가득차 있는 이 곡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