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水日] 네가 없는 생일
금색의 코르다, 시미즈 케이이치 × 히노 카호코.
2008.08.26 작성.
전에 레오안즈 연성, 가장 흔하고 현실적인 연애 쓸 때 이걸 많이 떠올렸던 것 같다. 그렇다. 난 사실 한 가지에 엄청 몰두 하는 타입의 남캐에 지쳐 여캐가 떠나는 내용을 참 좋아한다. 현실적이라고 생각하기도 하고. 아무리 사랑하고 상대도 나를 사랑한다는 걸 알아도 서로를 챙기는 정도가 어느 한쪽에 지나치게 치우치다 보면 덜 챙김 받으면서 상대를 더 많이 챙겨야 하는 쪽은 지칠 수밖에 없다고 생각하므로.
꿈을 꿨다. 그녀가 나오는 꿈이었다. 상당히 오랜만에 꾸는 그녀에 대한 꿈이었고, 비록 꿈이긴 하지만 꽤나 오랜만에 보는 그녀의 얼굴이었다. 내가 기억하는 그대로의 맑고 예쁜 얼굴이었다. 그런데 그 꿈은 언제 적 일일까? 연애초기라기엔 내가 상당히 어른스러워 보였다. 그리고 그녀의 단풍 빛의 붉은 머리카락은 가슴께에 살짝 내려와 있었다.
네가 없는 생일
W. 소담(@kimiga_iru)
꿈속에서 우리의 식탁에는 맛있는 음식들이 가득했고, 그녀는 아주 환한 미소로 내게 뭔가를 말하더니 강하게 나를 끌어안았다. 나도 당연하단 듯이 그녀의 허리를 껴안고 한 동안 그렇게 있었다. 그리고는 그녀의 이마에 키스했다. 아아. 그렇다. 그 꿈은 작년의 일이다. 작년의 나의 생일. 그때까지만 해도 당연한 일이었는데, 지금은 그 때의 모든 것이 내게 당연하지 않다. 아기자기한 소품으로 가득하여 꽤나 사랑스러운 느낌을 풍겼던 우리의 거실에는 작년 그대로 그 소품들이 놓여있지만 그 위엔 먼지가 가득하다. 함께 식사를 하던 식탁에는 두 사람 분의 음식이 오를 일이 없고, 그녀가 쓰던 방의 문은 늘 닫혀있다. 주인이 없는 방은 그녀가 떠났던 때 그대로 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당연하게 내 옆에 늘 있을 것이라 생각했던 그녀가 내 옆에 없다.
“카호코…”
혼자 일어나서, 혼자 아침을 만들고 혼자 그것을 먹는 생활이 거의 1년이 다 되어 가는데도 여전히 이 일상은 거북하기만 하다. 무엇을 먹어도 맛있지가 않다. 그녀가 없어서 괴로울수록 나는 음악에 빠져있을 수밖에 없다. 정말 바보 같다. 그녀가 날 떠난 것이 분명 음악 때문일텐데. 결국 아침은 몇 숟갈만 뜨고서 집을 나설 준비를 했다.
요즘의 나는 일본의 유명 오케스트라에서 수석 첼리스트로 있다. 종종 모교인 세이쇼 학원에 가서 음악과 학생들을 지도해주기도 한다. 세계적으로도 유명해진 오오사키 선배는 학원의 아이들을 무료로 도와주는 것에 대해 나를 몹시 대견해 하시는 것 같지만, 사실 전혀 그럴 필요가 없다. 왜냐면 딱히 순수한 음악자의 마음으로만 가르치는 건 아니니까. 작년 그때 세이쇼 학원을 찾아갔을 때는 꽤나 몇 년 만의 방문이었다. 그곳에 갔던 이유는 혹시나 그녀의 흔적을 찾을 수 있을까 하는 마음에서였다. 결국 찾지 못했지만, 혹시나 계속 학원을 드나들다보면 그녀에 대한 소식이라도 접할 수 있을까 하는 마음에-. 물론 후배들의 음악을 듣는 일도 즐겁다. 한 아이가 악보를 잘못 보고 엉뚱하게 켠 음이 내게 영감을 주기도 한다. 나의 뮤즈가 곁에 없으니 다른 여러 가지로부터 영감을 끌어내지 않으면 안 된다.
‘♬♪♩♬’
핸드폰에 문자가 왔다는 수신음이 들려와서 주머니 속의 핸드폰을 꺼내보았다. 0.0001%정도는 기대하고 있었다, 하지만 역시나 아니었다. 후유우미 구나.
「생일 축하해, 시미즈. 오늘만큼은 시미즈의 기분이 좋았으면 좋겠다. 선물은 다음에 줄게.」
고등학교 시절부터 인연을 이어온 친구 후유우미 쇼코. 후유우미와는 같은 음악과여서 알게 되었을 뿐만 아니라 함께 교내 콩쿠르에도 나갔었다. 그리고 나의 카호코를 만난 것도 그 곳에서라고나 할까. 후유우미는 분명 내가 다른 날들보다 더욱 처져있을 것이라는 것을 알고 문자를 보내준 듯하다. 하지만 기분이 좋았으면 한다고 좋아질 리가 없다. 무엇보다도 기분 좋을 일이 하나도 없다.
오늘은 오케스트라의 연습도 없고, 학교의 일도 없다. 그럼에도 밖으로 서둘러 나온 것은 집에 있기 싫어서였다. 그녀와 사귀어온 약 12년의 세월동안 우리는 서로의 생일을 밖에서 축하하기도 했지만, 그녀의 집 혹은 나의 집 아니면 우리의 집에서 축하하기도 했다. 그랬던 만큼 지금의 나에게 무척이나 거북하다.
“어디를 가야할까.”
어디를 갈지 정하지 못한 나는 목적지 없이 그냥 무조건 걸었다. 걷다보니 지난 1년 동안 제대로 보지 못하고 지나쳤던 것들이 눈에 들어온다. 아, 저 빵집. 저 집의 케이크를 카호코가 좋아했었지. 어, 저기 있던 분식집은 언제 없어진 거야? 대학 다닐 때 둘이서 자주 갔었는데….
나는 나를 떠나버린 그녀를 원망한다. 그녀가 몹시 밉다. 그렇지만 그녀가 좋다. 미치도록 좋다. 마음속에 두 가지 마음이 함께 한다. 미움과 그리움.
그녀와 나는 오랫동안 함께 해온 만큼 추억거리가 많다. 함께 찍은 사진도 셀 수 없이 많다. 그런데 그녀가 떠난 후 그 사진들이 모두 사라졌다. 그녀가 자신의 책상 서랍 속에 모두 넣고서 그 서랍을 잠가버린 것이다. 열쇠는 물론 그녀가 가져갔을 것이다. 잔인한 여자다. 보고 싶을 때 그녀의 사진조차 꺼내볼 수 없게 해버렸다. 사실 나는 그녀의 사진을 마음만 먹으면 볼 수 있었다. 서랍을 부수면 되니까. 하지만 나는 그렇게 하지 않았다. 혹시나 그녀가 돌아와서 부서진 서랍을 보며 ‘못 기다리고 이렇게 만들어 놓은 거야?’ 하며 나를 질책할까봐. 또 이 책상은 그녀가 무척이나 마음에 들어 하던 거니까. 또다시 원망 받고 싶지는 않다.
사진은 그렇다고 쳐도, 나는 여태껏 그녀와 자주 다니던 장소들을 등한시해왔다. 일부러 그런 것은 아니다. 어쩌면 그녀를 떠올리게 될까봐 두려워 무의식적으로 피하게 되었던 것인지도 모르겠다. 아이러니하다. 그녀의 흔적을 찾고자 학교에 드나들고 있으면서 정작 그녀와 나의 추억이 가득한 곳들은 기피해 오다니. 이곳들에 그녀가 가득한데.
그녀가 떠난 것은 정말 큰 충격이었다. 사실 나는 그녀가 떠난 것을 바로 알지 못했다. 나는 고등학교 1학년 때부터 음악을 작곡하는 것에도 관심이 많았다. 대학을 졸업할 즈음해서는 본격적으로 작곡을 시작했다. 나는 음악을 무척이나 사랑한다. 그래서인지 첼로를 킨다거나 음악에 관한 책을 본다거나 곡을 쓴다거나 할 땐 다른 것들에는 완전 신경을 쓰지 않게 된다. 사실 평소에도 멍하게 잘 있는 편이기도 하고. 작년 그녀가 떠날 당시에도 나는 작곡에 몰두하고 있었다. 그런데 하필 그때는 슬럼프까지 겹쳐있던 터였다. 평소에는 유순한 편인 나도 신경이 곤두설 수밖에 없었다. 그녀는 나에게 무척이나 신경을 써줬다. 그때 우리는 함께 식사를 하지 않은지 꽤 된 상태였다. 어느 틈엔가 그녀는 풀이 죽어있었다. 알았지만 신경 쓸 수가 없었다. 당장에 내 일만으로도 벅차다고 느꼈으니까. 종종 잠을 자다가 그녀가 혼자서 흐느껴 우는 소리를 듣기도 했다. 내 귀에 그 소리가 들리지 않게 하기 위해 힘겹게 울음을 참는 소리. 왜 나는 그때 문을 열고 나가서 그녀를 다정하게 안아주지 않았을까. 그러던 어느 날 그녀가 사라졌다. 정확히는 그녀가 없다는 걸 깨달았다. 어디 간거지, 싶었다. 이른 시간이긴 하지만 어딜 잠깐 나간 것일까 싶었지만 그녀는 돌아오지 않았다. 식탁에도 그녀의 방에도 아무런 메모도 없었다. 어찌 된 영문인지 알 수가 없었다. 그녀가 갔을 법한 곳을 여기저기 돌아다녀보았지만 그녀는 없었다. 그녀를 밖에서 찾기를 포기하고 집으로 가서 집을 뒤지기 시작했다. 그녀의 방을 열심히 뒤져보았지만 성과가 없었다. 무엇 하나 이상한 것이 없었다. 마치 그녀가 집을 잠깐 나선 것처럼 그녀의 방에는 별다른 이상이 없었다. 실마리는 내 방에 있었다. 나의 방 한 켠에 있는 수납장에는 사귀는 동안 여태껏 그녀가 나에게 선물한 물건이 들어있다. 넥타이라거나 목도리라거나 책, CD같은 것들은 같은 종류의 물건들과 함께 있지만, 이 서랍에는 그녀가 나에게 100일 동안 정성들여 썼던 일기장 같은 소중한 것들이 들어있다. 나는 거기에서 그녀의 편지를 발견했다. 그것은 벌써 이틀 전에 썼던 편지였다. 그녀는 이미 이틀 전에 나를 떠났던 것이다. 그런데도 나는 그녀의 부재를 눈치 채지도 못하고 있었다. 바보 같다. 엄청나게 한심스럽다.
나는 오케스트라에 병가를 내고 한 동안 집에서 울기만 했다. 우는 것 말고는 할 수 있는 것이 없었다. 극히 소량의 음식만 먹어서인지 나는 눈에 띄게 말라버렸고, 이제는 무엇도 할 기운이 없다 싶을 때 후유우미가 찾아왔다. 그녀는 집을 청소해줬고 죽을 끓여줬다. 몇 일간 제대로 먹은 것이 없는 내가 체하지 않도록 신경써준 것이다. 어느 정도 기운을 차린 후 나는 후유우미를 추궁했다. 그녀는 분명 카호코가 사라진 것을 알고 온 것 같았다. 나의 물음에 그녀는 슬픈 표정을 지으며 고개를 가로저었다. 알려줄 수 없다고 했다. 다만 ‘케이이치 부탁할게’ 라는 말을 했다고는 말해줬다.
“어디로 간거야, 카호코….”
너무나 슬픈 날이다. 아침을 아주 조금 먹은 후로는 아무 것도 먹지 못한 탓에 배가 고팠다. 너무 걸은 탓에 발도 아프다. 뭔가 먹을거리를 사가야 하는 걸까 고민했지만, 결국 편의점에서 맥주 몇 캔과 안주거리만 샀다. 역시나 집이 가까워질수록 발걸음이 무거워진다. 차라리 누군가와 약속이라도 잡았으면 좋았을 걸 하는 생각이 든다.
가방 속의 키를 꺼내 문을 열었다. 불이 켜져 있고 뭔가 맛있는 냄새가 난다. 이런, 아무래도 아침에 실수로 불을 끄지 않은 모양이다. 게다가 창문을 닫는 것도 깜빡했는지 다른 집의 저녁식사 냄새가 솔솔 풍겨온다. 한숨을 쉬며 신발을 벗었다. 옷을 갈아입기 전에 맥주와 안주거리가 든 봉지를 식탁에 놔둬야겠다.
“……………”
식탁에는 편의점 봉지를 놔둘 자리가 없었다. 아침에 내가 먹다만 음식그릇 때문이 아니다. 그것들이 있어야 할 자리엔 많은 음식들이 있었다. 김이 모락모락 나는 음식들이. 그리고 거기엔 그녀가 있었다. 나의 카호코가 있었다.
“………선배……”
“다녀왔어, 케이이치. 생일- 축하해.”
그녀가 떠난 것을 알았던 때 이미 깨달은
사실이지만 지금 다시 한 번 뼈저리게 느낀다. 나는 그녀가 없으면 안 된다. 우울하기만 하던 나의 생일은 그녀가 모습을 한 번
보여주는 것만으로도 최고의 생일로 바뀌어버렸다. 다시 한 번 그녀에게서 생일 축하한다는 소리를 들었다. 지금의 나에게는 ‘사랑해’
라는 말보다도 더욱 달콤한 말이다.
돌아와줘서 고마워, 카호코 선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