십 여분 간 노트북의 화면을 노려보고 있던 잇세이는 결심을 굳히고 화면에 띄워져 있는 검색창에 지금껏 몇 번이고 썼다 지웠던 이름을 적어 넣었다. 「朝比奈 柚希」. 익숙한 이름, 그리고 지난 몇 년간 핸드폰 액정에 뜨길 기다렸던 이름이었다. 자연스럽게 다시 또 백스페이스로 향하는 손가락의 방향을 돌려 엔터키를 눌렀다. 그저 노트북의 자판을 누를 뿐인 이 일을 잇세이는 몇 번이고 반복했었다. 하지만 늘 엔터키를 누르기 전에 백스페이스를 누르거나 창을 끄곤 했다. 주르륵, 검색창에 적어넣은 '아사히나 유즈키'라는 이름과 관련된 페이지나 글의 목록이 가득 떴다. 그 중 대부분이 몇 년 전의 글들이라는 점이 잇세이의 입안을 쓰게 했다. 사진 카테고리를 눌러 화면에 뜬 사진들을 위에서부터 눈으로 훑었다. 사진 속의 그녀는 그가 기억하는 모습에 비해 다소 과하게 귀여운 의상들을 입고 활짝 웃고 있거나 마이크를 들고 노래를 부르고 있었다. 낯설었다. 그의 기억 속 그녀는 화려한 것 보단 수수한 옷을 선호했고 또래의 다른 여자 동급생들에 비해서 화장도 거의 하지 않는 편이었다. 그래서인지, 분명 이 사진들 속의 그녀는 그와 알고 지내던 시절의 그녀일 텐데도 그가 기억하는 평소와는 달리 화장품으로 볼을 발그랗게 물들이고 웃고 있는 것만으로도 마치 다른 사람 같았다.
사진들을 한참을 본 후에야 잇세이는 다시 통합검색 카테고리로 이동했다. 페이지에 뜬 글들을 읽으며 내리다 보니 그녀가 속했던 소속사의 이름이 적혀있었다. 「사무소 에르돌」. 잇세이는 아까 전에 자신이 적었던 이름을 지워내고는 대신에 그곳에 '사무소 에르돌'이라고 적었다. 그가 찾고 있는 것이었다. 파란 글씨로 뜬 홈페이지 주소를 누르자 에르돌 사무소의 내부로 추정되는 공간의 모습이 홈페이지의 배경으로 떴다. 잇세이는 사무소를 소개하는 페이지로 넘어가 그곳에 적힌 설명들을 천천히 읽었다. 사무소의 소속 아이돌 페이지를 누르자 남자 네 명이 화식 복장을 입고 잔뜩 거만한 포즈를 취하고 있는 그룹만이 화면을 채우고 있었다. 그녀의 이름은 없었다.
"왜 녀석은 없지?"
분명 화면 한 켠을 차지하고 있을 것이라 생각했던 이의 사진이 없자 잇세이는 그 페이지에 더 이상 아무것도 없다는 것을 알면서도 스크롤바를 올렸다 내리기를 반복했다. 은퇴한 사람은 더 이상 사무소에 이름이 적히지 않는 건지 의문을 느끼며 잇세이는 사무소로 찾아오는 방법을 안내하는 페이지로 화면을 이동시켰다.
다음 날 점심 시간이 지났을 무렵, 잇세이는 한 낯선 사무실의 소파에 앉아 그 방의 주인을 기다리고 있었다. 아무런 약속도 없이 무작정 사무소를 찾아온 것이었지만 약속을 하지 않았단 말에 처음엔 사장님은 외출 중이라고만 전했던 사장의 비서는 잇세이의 사나운 눈매에 혼자 겁을 잔뜩 집어먹고는 그를 사장의 사무실로 안내했다. 덕분에 에어컨이 나오는 시원한 방에서 편히 기다렸으니 이번만큼은 자신의 눈매에 고마워 해야겠다고 그는 속으로 생각했다. 혼자만 남겨진 채로 방을 눈으로 찬찬히 살피고서도 한참의 시간이 지났다. 슬슬 가만히 앉아있는 것에 몸이 근질근질해지던 차에 달칵, 하고 문이 열렸다. 마침내 사장이 온 것인가 하고 문을 향해 몸을 돌린 잇세이의 눈에 들어온 것은...
".............곰탈?"
"에에, 너무해요! 곰탈이라니!"
"......? 그보다 사장은 언제 오는 거지."
사무소 홍보용인지, 곰탈을 쓴 사람의 등장에 일순 깜짝 놀랐던 잇세이는 혼잣말을 내뱉으며 다시 몸을 돌렸다. 그러자 곰탈을 쓴 사람이 잇세이의 앞쪽으로 다가와 반대편 소파에 앉았다. 이 사무소의 사장에게 용무가 있는 또 다른 손님인가 하고 생각하며 잇세이가 손목의 시계를 들여다보려는데, 곰탈이 다시 말을 걸어왔다.
"내가 바로 에르돌의 사장이에요~ 그리고 아이돌 양성학교인 에트월 뷔오스쿨의 교장이기도 하죠~"
잇세이는 자신이 잘못 들었다고 생각했다. 그는 자신의 눈매만큼이나 묘하게 위압감을 주는 눈썹을 찡그리며 자신이 들은 말에 대한 반응을 가감 없이 토해냈다.
"하?"
"히익~!"
그저 잘못 들은 것 같아 그저 되물었을 뿐인데 곰탈이 오바스럽게 자신이 겁 먹었음을 표현했다. 미친 사람은 아닌가 싶어 곰탈을 뚫어지게 보는데 방금 전의 반응이 연기인가 싶을 정도로 그가 태연하게 무슨 일로 자기를 만나러 온 거냐고 물어왔다.
"아아. 아사히나 유즈키. 지금 어디 있지?"
"호오... 그녀를 찾는 사람은 오랜만이네요. 그런데 아사히나 양을 찾는 이유가?"
조금 장난스럽던 높은 목소리가 한 순간에 낮게 깔리며 잇세이에게 답을 요구했다. 잇세이는 순간 자신이 꺼내선 안 될 말을 꺼낸 것인지 고민했다. 하지만 그는 그저 이곳에 소속됐었던 아이돌의 행방을 물었을 뿐이다. 그것도 몇 년이나 참다가 이제야.
"그 녀석의 동창, 토도로키 잇세이다. 그 녀석 어느 날 갑자기 자취를 감췄는데. 그 녀석이 있었던 사무소라면 알까 싶어서."
"....글쎄요."
"무슨 대답이 그렇지?"
잇세이는 상대의 시원치 않은 대답에 저도 모르게 미간을 찌푸렸다. 아사히나의 행방을 알면 안다, 모르면 모른다고 하면 될 일이다. 곰 사장의 이도 저도 아닌 대답이 잇세이의 신경을 건드렸다.
"하지만~ 지금은 모르지만, 알아볼 방법은 있어요."
"하? 그럼 그렇다고 먼저 말하라고. 그리고 빨리 알아봐 줘. 죽었는지 살았는지 몇 년 간 연락조차 되지 않는 녀석이니."
팔짱을 낀 채로 사장에게 아사히나 유즈키의 행방을 서둘러 알아봐달라고 얘기하며 잇세이는 사장의 얼굴... 위의 곰 탈의 얼굴을 바라봤다. 그때, 잇세이는 곰탈에 가려져 볼 수 없는 사장이 '웃고 있다',고 느꼈다. 보이진 않았지만 어쩐지 그렇게 느껴졌다. 묘하게 드는 이상한 예감에 몸을 뒤로 주춤하자 자연스러운 동작으로 곰 사장이 잇세이 쪽으로 몸을 기울였다. 눈 쪽을 마주 바라봤다간 이상한 일에 휘말려들 것만 같은 찝찝함에 잇세이는 앞으로 몸을 기울인 탓으로 배 부근이 접혀진 곰탈이 배 부근으로 시선을 돌렸다. 마치 뱃살 같다,는 쓸데없는 생각이 머리를 스치고 지나갔다.
"아이돌을 해보지 않겠어요?"
다시 한 번 자연스럽게 잇세이의 입에서 '하?' 하는 소리가 튀어나왔다. 찝찝한 예감대로 곰탈을 쓴 괴상한 사장은 그 자신의 모습처럼 이상한 소리를 꺼내었다. '아이돌? 내가?' 하고 잇세이는 속으로 코웃음을 쳤다.
"무슨 헛소리지?"
"당신이 찾는 아사히나 양은 우리 에르돌의 첫 아이츄였죠. 정확히는 시범작 같은 거지만요~ 어쨌든 그녀로부터 시작된 우리 사무소의 아이츄가 되어 보지 않겠어요?"
솔직히 말해서 잇세이는 곰 사장이 정말로 미쳤다고 생각했다. 토도로키 잇세이, 그는 태어날 때부터 지금의 매서운 눈매였다. 초등학생 때부터 그저 쳐다봤을 뿐인데 자기를 노려봤다며 겁을 먹는 동급생들, 시비 거냐며 욕을 하던 상급생들을 여럿 겪으며 잇세이는 한쪽 앞머리를 길게 기르고 다니기 시작했다. 두 눈 중 한쪽이라도 가리고 다니면 낫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서였다. 양쪽 눈을 다 가릴 수 있으면 좋겠지만 그렇게 하면 분명 여기저기에 부딪히며 다닐 게 뻔하므로. 하지만, 물론, 효과는 전혀 없었다. 한쪽 눈을 가리고 나서도 여전히 주변 사람들은 이유 없이 겁을 먹고 그를 피하거나 뒤에서 수군거렸다. 잇세이는 그런 시선도, 수군거림도 전부 걸리적 거리고 귀찮았다. 그래서 그때부터 잇세이는 모든 사람들에게 거리를 더 뒀다. 접촉을 최소한으로 하면 상대방의 불쾌감도, 그 자신이 느낄 불쾌감도 줄어들 테니 그것이 최선의 방법이라고 생각했다. 외롭다는 것조차 느끼지 못할 만큼 그런 생활에 익숙해졌을 때였다, 찾고 있는 그녀를 만난 것이.
"당신이 예전의 자기처럼 아이츄가 되었단 걸 알면 그녀도 기뻐할 거에요~"
"어딨는지도 모른다면서 무슨 말을 하는 거지?"
분명 곰탈 때문에 그 속의 사람의 얼굴은 보이지 않았지만 이상하리만치 그가 어떤 표정을 짓고 있을지 상상이 갔다.
"찾아드리죠~ 당신이 우리의 아이츄가 되어준다면."
"......"
"아사히나 양은 연예계를 떠나기엔 너무나 많은 재능을 가지고 있죠. 그녀는 이 업계에 있어야 할 사람이죠~ 하지만 이제 그녀가 다시 아이츄로 활동하는 건 조금, 어려워요~ 그러니 그녀가 '다른 위치'로 나마 이곳에 돌아올 수 있도록 등을 떠밀어줄, 약간의 자극이 필요해요~"
"그 말인즉슨, 내가 그 자극이 되라는 거군."
"이해가 빨라서 다행이에요~"
잇세이는 여태껏 저 자신이 아이돌 같은 게 되는 걸 상상해본 적조차 없었다. 친하게 지내던 아사히나가 아이돌 활동을 하는 걸 옆에서 보면서도 한 번도 그렇게 되어보고 싶다거나 되면 어떨까 하는 생각조차 해본 적이 없었다. 왜냐하면 그는 아이돌이라는 일에 얼마나 자신이 안 어울리는지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아이돌 같은 건, 본인 같은 사람이 아니라 아사히나처럼 반짝이는 사람에게나 어울리는 일이 아닌가. 가만히 있는 것만으로도 다른 사람들을 겁에 질리게 하는 자신에게 사람들을 기쁘게 하는 아이돌이라는 직업만큼 안 어울리는 직업이 있을까?
"미안하지만 난 그런 과가 아니라서."
"아이돌의 가장 큰 무기가 뭐라고 생각하세요?"
"...글쎄. 반짝임?"
"틀렸지만 조금은 맞았네요~. 정답은 바로 매력이에요~. 하지만 모든 아이돌이 같은 매력을 갖고 있다면 그건 대중들에게 '매력'으로 다가오지 않겠죠. 연예계의 무서운 점은 조금만 오래 자리를 비우면 사람들의 머릿속에서 잊혀진다는 거예요~ 그렇기 때문에 다른 사람이 가지지 않은 독특한 매력은 아주 훌륭한 무기가 되죠! 그리고 당신은 충분히 그걸 가지고 있고요~ 어때요? 아이츄가 되고 싶은 마음이 들지 않아요~?"
가당치도 않은 일이다. 하지만 어쩌면 이것이 아사히나 유즈키를 찾을 유일한 방법일지도 모른다. 도둑이사를 가버려서 거주지도 모르고, 핸드폰 번호와 메일을 바꾼 것인지 연락해도 답장은 없다. 그래도 그녀 쪽에서 다시 먼저 연락해올 거란 생각으로 몇 년을 보냈다. 하지만 기대와는 다르게, 그녀에게선 연락이 없었고 이제 그는 기다리기만 하는 것이 답은 아니란 것을 안다. 그리고 마침 알바도 며칠 전에 그만뒀다.
"아사히나는 약속대로 찾아내겠지?"
"물론이에요~!"
"좋아. 해보지. 단, 아사히나를 찾는 것 외에 나도 조건이 하나 있다."
"뭐죠?"
"같이 할 사람은 내가 직접 찾겠어. 낯선 녀석들과는 제대로 호흡 맞출 수 없으니까."
"좋아요, 잇세이군. 하지만 서둘러주세요~. 곧, 에트월 뷔오스쿨의 2기생을 모집할 거니까요."
곰 사장은 신이 나서는 에트월 뷔오스쿨이라는 본인들의 아이돌 양성학교에 대해 설명하며 책자를 건네줬다. 잇세이는 양성학교를 홍보하는 책자를 휘리릭 넘겨보며 사장의 말을 들었다. 사장에 따르면 잇세이가 그곳에 입소하고 나면 거기에서 춤과 노래, 그리고 연기 등을 배우며 아이돌이 되기 위해 아이츄로서의 활동하게 된단다. 학교와 아이츄로서의 활동에 대한 설명을 대충 흘려들은 후, 잇세이는 곰 사장에게 건네 받은 이력서에 자신의 신상정보를 간단하게 기입했다. 그렇게 당장 필요한 것은 끝난 것인지 곰 사장은 신이 난 채로 일어서 그를 배웅해줬다.
잇세이는 스스로도 터무니없는 짓을 저질러버렸다는 것을 잘 알았다. 거기다 일이 너무 일사천리로 진행되어 버렸다. 다른 방도가 없으니 어쩔 도리가 없다며 스스로 되뇌며 그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손에 들린 책자를 내려다보며 길게 한숨을 내쉬었다.
"하여간 손이 많이 가는 여자라니까."
그는 후드의 주머니 속에서 핸드폰을 꺼내 주소록에서 한 이름을 찾아 전화버튼을 눌렀다. 짧은 연결음이 지나고 달칵, 상대가 전화를 받는 소리가 났다. 잇세이는 자신이 꺼낼 말에 상대가 어떤 반응을 보일지 상상해보았다. 분명 또 자길 놀리는 거냐며 화를 내겠지.
"어이, 타카미치. 나랑 같이 일이나 하자."
토도로키 잇세이는 강하게 내리쬐는 여름의 태양 아래에서 한 손의 주먹 쥐며, 마치 이미 아사히나 유즈키를 찾은 사람처럼 의기양양하게 씨익 웃었다. 셋이서 다시 그녀를 찾으면 된다, 고등학생 때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