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배의 얼굴을 마지막으로 본 후로 어느덧 몇 번의 계절이 흘러버렸네요. 그때 그 계절과 같은 겨울이네요,이제.
헤어진 후에 선배의 약혼 소식 들었어요. 그 후
결혼 소식도 들었고요. 누구에게 들은 것인지는 유노키 선배도 잘 아시리라고 생각해요. 히하라 선배가 너무나 슬픈 얼굴로 그
소식을 전해주셔서 선배에게 미안하기까지 했어요. 그때, 사실은 굉장히 슬펐어요. 헤어지는 건 함께 내린 결정이었는데도 저도 모르게
히하라 선배 앞에서 서럽게 울어버렸어요. 거의 3년이 다 되어가는 일인데도 아직도 당황해서 어쩔 줄 몰라 하던 히하라 선배의
얼굴이 눈에 선해요.
유노키 선배. 그때 우리가 한 결정은 잘한
것이었을까요, 아니면 잘못한 결정이었을까요. 저는 아직도 그것을 잘 모르겠어요. 지금도 하루에 몇 번씩 그것이 옳았다고 생각해요.
또 틀렸다고도 생각해요. 몇 번이고 후회를 했다가 잘했었다고 제 자신을 다독여요. 선배는 어떠신가요? 후회를 하고 계신가요?
아니면 히노 카호코와 헤어지고 집안에서 정해준 여자 분과 결혼해서 다행이라고 생각하고 계신가요? 요즘도 종종 선배가 꿈에서
나타나요. 꿈속의 선배는 저에게 다정히 미소 지어주세요. 그리고 언제나 후회하고 있는 눈을 하고 있죠. 꿈속 선배의 미소와 눈이
너무 슬퍼서 저는 그만 꿈에서 깨어나 버려요. 늘 아쉬움이 남죠. 그래서 저도 모르게 늘 울고 말아요. 그래도 너무 나무라지는
말아주세요. 선배가 싫어하는 바보 같은 모습일지도 모르지만, 이제는 일방통행으로 형태가 변해버린 사랑을 하고 있는 저는 그 꿈을
조금이라도 더 음미하고 싶으니까요.
선배. 혹시 저를 만난 것을 후회하시나요?
고등학교 때 아마도 콩쿠르 제 3셀렉션 후 제가 놀이공원에 함께 가주실 수 없냐고 여쭈었을 때였던가요. 그때 선배가 제게 휘둘리는
건 사양이라고 하셨었죠. 그때 당시엔 그 말뜻을 이해하지 못했었는데, 지금 생각해보면 참 따뜻한 말이었네요. 선배는 어떠셨는지 잘
모르겠지만, 저는 알면서 시작했어요. 막연하게나마 선배와의 결혼, 꿈같은 따뜻한 가정을 이루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그렇게
생각하면서도 선배를 만났어요, 저는. 미래를 어렴풋이나마 예측하고 있었기 때문에 그 당시에 하루하루 선배를 넘치도록 사랑할 수
있었다고 생각해요. 그렇지만 말이죠. 알고 있었다고 해도 슬픈 건 슬픈 거더군요. 지금도 그렇지 않다고 할 수가 없네요.
선배는 불쌍한 사람이에요. 자신의 마음이
향하는 대로 살아갈 수 없는 사람이죠. 선배를 대하는 선배의 할머님의 태도는 정말 저를 가슴 아프게 했어요. 선배도 그런 할머님의
태도를 싫어했죠. 그것을 기분 나빠하면서도 그것에 따르는, 선배는 그런 사람이었죠. 선배의 할머님은 나쁜 사람이라고 생각해요.
고인이 되어서까지 선배를 옭아매시네요, 그분은. 저는 말이죠. 선배가 자신이 원하는 것을 하길 바라요. 선배는 유노키
아즈마잖아요. 형들의 그림자일 필요는 없다고 생각해요.
선배는 잊길 바라고 계시겠지만 저는 아직
우리가 헤어지던 날을 기억해요. 서로 부둥켜 안고서 아무 말 없이 서로 울기만 했죠. 참 신기했어요. 울어도 울어도 눈물이 마르질
않아서요. 그때가 처음이었어요, 선배의 눈물을 봤던 것은. 선배는 사람들에게 감정을 잘 드러내지 않는 사람이었으니까요. 그렇지만
저는 그때 본 선배의 눈물이 너무 좋았어요. 아직도 잊을 수 없을 만큼이요. 그 눈물은 선배의 다정함이었고 애절함이었으니까요.
평소에 제게 했던 가슴 시린 말들과는 다른, 너무나 솔직한 선배의 모습이었죠. 그때 그렇게 따뜻한 눈물을 흘렸던 것은 저를 좋아해
주셨기 때문이겠죠?
선배와의 일들, 아직 추억으로 삼을 수
없어요. 삼고 싶지 않아요. 적어도 저는 아직도 그때 그대로의 마음이니까요. 언제까지 계속 되는 걸까요, 제 짝사랑은. 그러니까,
선배. 답장은 부디 보내지 말아주세요. 어쩐지 선배는 제게 따끔히 ‘바보처럼 굴지 마’라고 할 것 같으니까요. 방금 전의 말은
농담이에요. 설마하니 정말로 그렇게 보내시려 한 것은 아니겠죠? 나중에 다시 편지할게요. 그때는 답장 보내주세요. 그땐 선배가
제게 추억이 되었을 때일 테니까요.
저는 선배의 행복을 바랄 수가 없어요. 아니 그러기 ‘싫다’는 표현이 맞겠네요. 그러니 선배도 저의 행복을 빌지 말아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