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망 소재, 조금 잔인한 묘사가 있습니다. 학살이라는 단어가 나옵니다.
  • 레이는 글에서 게임에서처럼 할아버지의 말투를 사용하거나 오레이 말투를 사용하지 않습니다(사용하는 것이 나오지 않습니다).
  • 일본의 마녀집회 해시태그의 유행을 보고 작성하게 된 글입니다.
  • 따라서 안즈는 20대 아가씨의 모습을 한 나이가 굉장히 많은 마녀이며 레이는 나이 어린 소년~ 20대 중반의 청년입니다.
  • 탈고를 하지 않아 오탈자가 있을 수 있습니다.

 

 

 

 

 

 

 

 

 

 

 

 

 

 

 





 안즈는 일을 할 때 언제나 즐거운 색을 하고 있습니다! 우리 스위치나 다른 아이돌 유닛의 무대를 볼 때면 아주 아주 즐겁고 행복한 색을 하고 있어서 소라도 더 신나고 즐거워져버립니다! 소라는 안즈의 즐겁고 행복한 색이 정말로 좋습니다♪

 스승은 소라와 함께 게임을 할 때면 즐거운 색을 하고 있습니다! 선배와 함께 일 때는 무서운 얼굴을 하고 있을 때가 많지만 사실은 즐거운 색을 하고 있을 때가 종종 있습니다♪ 스승은 정말 귀엽습니다! 소라는 스승의 즐거운 색도 정말로 좋습니다!

 그리고 사실 이것은 비밀이지만, 안즈와 스승은 둘이 함께 있을 때 즐겁고 행복한 색을 하고 있습니다. 안즈가 라이브를 볼 때나 스승이 소라나 다른 사람들과 함께 있을 때와는 다른 『행복한 색』입니다. 뭔가 따뜻함이 느껴지는 『행복한 색』입니다. 선배에게 두 사람의 따뜻하고 행복한 색에 대해 물었습니다. 선배는 그것은 두 사람이 서로 좋아하기 때문이라고 했습니다. 웃으며 말하는 선배는 굉장히 따뜻한 색을 하고 있지만 안즈와 스승과는 다른 따뜻한 색입니다. 어째서일까요~?

 안즈는 소라를 좋아해줍니다! 소라를 볼 때면 즐거운 색을 하고 있어서 소라는 알 수 있습니다. 하지만 안즈가 소라를 볼 때의 색은 스승을 볼 때의 색과 다릅니다. 소라는 그 색이 정말로 예쁘다고 생각하지만 어쩐지............ 소라도 안즈를 아주 좋아합니다. 안즈와 함께 있을 때의 소라는 어떤 색을 하고 있을까요? 그리고 지금 소라는 어떤 색을 하고 있을까요? 소라는 잘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소라는 알 수 있습니다. 함께 있는 안즈와 스승을 보는 소라는 선배처럼 따뜻하고 행복한 색을 하고 있을 겁니다! 왜냐하면 소라는 안즈도 스승도 정말 정말 좋고 소라는 착한 아이이기 때문입니다! 안즈와 스승을 보는 소라는 따뜻하고 행복한 색일 겁니다♪


- 안즈른 전력 마흔 두 번째 : [졸업]-









봄, 그리고 다시 봄





W. 소담(@kimiga_iru)








"뭐, 일단은 이별이지만. 조금도, 우울해할 필요는 없어. 멋진 미인이 되어줘, 안즈쨩. 그러면 나, 다시 만났을 때야말로 진심으로 구애할테니까. 먼저 가서 기다리고 있을게, 예능계에서 다시 만나자. 그럼 안녕, 안즈쨩. 아하하☆ 그래그래, 그 미소! 그 미소를 나 꽤 진심으로 좋아했어, 다녀오겠습니다~......♬"


 조금 많이 낯간지러운 말을 여느 때처럼 아무렇지 않아 보이게 하는 카오루의 눈은 어쩐지 다른 때보다 조금 더 반짝였다고 안즈는 기억했다. 그렇다면 그때 그의 말을 듣고 있던 자신의 얼굴은 어땠더라? 안즈는 그때를 다시 떠올려봤지만 역시 그다지 알고 싶지 않았다, 그때 자신의 얼굴 표정이라거나는. 떠올리고 싶지도, 인정하고 싶지도 않지만 그때 자기의 양쪽 귀가 라면을 넣기 직전의 끓는 물처럼 뜨거웠다는 것만큼 아주 잘 기억하고 있었다.



 어째서 카오루가 자신과 거리를 좁히고 싶어 하는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그가 좁히고 싶어하는 안즈 자신과의 거리는 선후배로서라거나 아이돌과 프로듀서로서가 아니었다. 사실 안즈는 이 문제에 대해 당사자에게 직접 묻기까지 했었다. "어째서, 저랑 거리를 좁히고 싶어 하세요?"라고. 하지만 꽤나 고민 끝에 했던 그 질문에 그는 "네가 정말로 귀여운 여자애니까~,로는 안돼?"라고 대답했다. 안된다. 그의 대답은 그녀에게 전혀 대답이 되지 않았다. 정말로 귀여운 여자아이여서라니. 아무리 안즈 자신이 자기의 얼굴에 후한 점수를 준다고 하더라도 특출난 미인이라곤 할 수 없었다. 그가 여태껏 만나온 많은 여자아이들 중에 자신 정도의 외모의 사람이 전혀 없었을까? 아니면 그는 그때마다 자기에게처럼 거리를 좁히고 싶어 했을까? 여분의 베개를 껴안은 채 안즈는 고개를 붕붕 가로저었다. 그의 말을 깊게 받아들이진 말자고 다시 한 번 다짐해보지만 그럼에도 자꾸 그때의 그 얼굴이 떠오르는 건 분명 그때 그의 눈이 유난히 반짝여서였다고, 안즈는 변명했다.


"두 번째 단추... 이미 다른 여자아이가 받았겠지...?"


 천장을 바라본 채로 무심코 내뱉은 말에 화들짝 놀라 안즈는 몸을 벌떡 일으켰다. 일본의 여자아이, 남자아이들 중에 졸업생의 교복 마이의 두 번째 단추가 무엇을 의미하는지 모르는 사람을 없을 것이다.


"미쳤어 미쳤어..."


 안즈는 자신이 다른 누구의 것도 아닌 카오루의 교복 마이의 두 번째 단추를 떠올렸단 사실이 당황스러웠다. 옆구리에 끼고 있던 베개로 잠시간 얼굴을 눌러덮고 있다가 다시 내려 품에 꼬옥 껴안은 안즈는 다음날 카오루를 어떤 얼굴로 봐야할지 알 수 없었다. 여러 가지 문제로 걱정도 많았고 해야 할 일도 많았던 탓에 반례제 날엔 완전히 잊고 있었지만, 이미 약 한 달쯤 전부터 반례제 이후의 언데드와 홍월, 그리고 유성대의 카나타는 스케줄이 잡혀 있었다. 「예능계에서 다시 만나자」 같은 소리를 듣고서 불과 며칠만에 다시 만나야 한다니, 정말 최악이다. 나름대로 오빠처럼 믿고 따르는 선배와 귀여워 하는 후배의 말버릇이 떠오르는 밤이었다.


"정말 짜증나... 완전 죽고 싶어..."






어안이 벙벙하단 말은 분명 이럴 때 쓰는 것이리라. 당연하게도 애슬레틱 에리어 홍보를 위한 촬영현장에서 카오루와 마주쳤다. 그런데 그는 너무 아무렇지 않게 "거절 당할 각오로 고백한 이후로는 처음이지?"라고 말했다. 내가 거절했던가? 아니 그보다 선배가 제대로 고백을 하긴 했던가? 안즈는 눈알을 굴리며 고민했다. 그 때문에 인상을 찌푸려버린 탓인지 카오루는 완전히 오해를 한듯 "재회했을 때 진심으로 구애하겠다고 해놓고, 아직 예능계에 들어가려는 단계이고. 안즈쨩도 역시 곤란하지?"라고 말했다. 역시 반례제 때의 그 말들은 평소의 그가 하는 시시껄렁한 작업 멘트였던 걸까. 안즈는 실망하는 자신이 낯설었다. 어째서? 스스로 반문하며 안즈는 왠지 상한 자신의 기분을 무표정한 얼굴 뒤에 숨겨 카오루에게 전했다.


"맞아요. 곤란해요."


 안즈의 대답에 카오루는 그가 곤란할 때 종종 짓는 표정으로 웃었다. 반칙이야, 하고 안즈는 생각했다. 왜 가슴 한 켠이 저릿한지 안즈는 알 수 없었다. 그러한 감정이나 느낌이 무엇인지 모를만큼 안즈는 어리지 않았지만 어째서 이런 감정과 기분이 드는 상대가 그인 것인지가 그녀로서는 이해가 가지 않았다. 전학 와서 처음 만났을 때부터 줄곧 그를 피해다니고, 그가 늘 가볍게 하는 차 마시거나 데이트 하자는 권유를 일말의 망설임도 없이 거절해왔던 것은 다름 아닌 그녀 자신이었으니까. 안즈는 때마침 나타나 준 레이에게 감사했다. 갑자기 나타나 말 건 그 덕에 카오루의 시선이 그녀를 떠나 그에게 향했기 때문이다. 틀림없이 엉망일 지금의 얼굴을 그에게 만큼은 보이고 싶지 않았다. 하지만 레이의 상태를 살피며 그와 잡담을 나누던 카오루는 대화가 끝나자 잊지 않고 안즈를 불러, 자기 옆에 앉을 정도론 서로의 거리를 좁혔지 않느냐며 그녀를 자신의 옆에 앉혔다. 카오루가 손짓하는대로 그에게 가까이 다가가면서도 안즈는 어디서부터 어디까지가 그의 진심이고, 또 어디서부터 어디까지의 여자를 좋아하는 그의 가벼운 구애인지 알 수 없어 그가 원망스러웠다.


 나무 그늘에 레이와 쿠로, 그리고 카오루와 앉아 언데드와 홍월의 다른 멤버들이 고군분투 하는 것을 지켜보던 안즈에게 카오루는 종종 말을 걸어왔다. 다른 때와 마찬가지로 중요하지 않은 시시껄렁한 이야기뿐이었지만 안즈는 다른 여느 때보다 카오루와 눈을 맞추고 그 얘기를 들으며 때때로 반응해줬다. 전엔 분명 이런 상황이 조금 부담스럽게 느껴졌던 것 같은데 어쩐지 그의 얼굴을 바라보며 그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고 있는 이 시간이 즐겁게 느껴졌다. 카오루가 하는 말을 반쯤은 흘려들으며 안즈는 그의 얼굴을 찬찬히 뜯어봤다. 언데드라는 인기 유닛의 양대 간판답게 잘생긴 얼굴이었다. 여자들에게 인기 있는 것도 무리는 아니라는 생각이 새삼 들었다.


'아...... 난 선배가 처음부터...'


 레이의 옆 쪽에서 말을 걸어온 쿠로를 향해 몸을 돌린 카오루의 등을 바라보며 안즈는 중요한 사실을 깨달았다. 처음 만났을 때부터 그가 그토록 부담스러웠던 이유. 그리고 그 이후로도 그가 쭉 다른 사람들과 다르게 껄끄럽고 부담스러웠던 이유. 깨닫고 보니 여태 풀리지 않았던 의문들이 모두 해결되는 듯 했다. 왜 이런 중요한 걸 이제서야 깨달은 걸까. 뒤늦게 후회해봐야 그는 이미 학교를 졸업한 사람이었다. 학교에서 그와 마주치는 것도, 그로부터 예의 그 가벼운 데이트 권유를 받는 것도 이젠 더 이상 불가능한 일이었다. 봄에 전학 와 만나서 다시 봄에 졸업생인 그와 이렇게 멀어지는 것이다. 그가 이전에 말했던 것처럼 이제 안즈는 더 이상 학교의 유일한 프로듀서가 아니게 될테고, 무엇보다 이제 그는 학교의 아이돌이 아니다. 그에게 있어서 학교 유일의 프로듀서이자 여학생이라는 특수성은 이제 안즈에게서 사라지는 것이다. 어쩐지 눈이 시큰 거리기 시작했다. 안즈는 아랫입술을 지그시 누르곤 천천히 숨을 뱉어냈다. 당장의 눈물은 참아냈지만 지금 이 자리에 계속 있다간 정말로 꼴사납게 눈물이 터질 것 같아서 안즈는 서둘러 자리에서 일어나 코가 일행에게 음료를 가져다주러 가겠다고 외치며 자리에서 도망쳤다.





 시간은 순식간에 지나갔다. 프로듀서인 안즈 역시 놀러온 것이 아니었기에 애슬레틱 에리어 체험에 참여한 멤버들의 음료수와 땀을 닦을 수건을 챙기랴 목장에서 스태프들을 도와 동물들을 데리고 나오랴 정신이 없었다. 모든 촬영이 끝나고 촬영에 참여했던 멤버들이 각자 집으로 가기 위해 역 앞에 모였을 땐 이미 하늘이 단풍잎처럼 붉게 물들고 있을 때였다. 이제 정말 끝이구나. 안즈는 흘긋 카오루를 쳐다봤다. 이런 그녀의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카오루는 다른 사람들과 잡담을 나누는 레이에게 졸업 후의 활동과 관련해 상담하고 싶다며 이만 해산하자고 했다.


'멍청이... 선배 바보!'


 따로이 인사없이 레이와 무언가를 얘기하며 가는 카오루의 뒷모습을 보고 있자니 정말로 반례제 때 그가 했던 말들은 역시나 평소의 가벼운 구애 같은 것이었단 게 실감이 났다. 집이었다면 침대에 뛰어들어 엉엉 울기라도 할 테지만, 아는 사람들과 함께 밖에 있는 지금은 그럴수도 없었다. 조금씩 조금씩, 카오루가 멀어져갔다. 깨닫자마자 이대로 끝이구나. 안즈는 그 뒷모습을 보며 중얼거렸다. 여태 거절 당하면서도 끊임없이 데이트를 가지 않겠냐, 차를 마시러 가지 않겠냐 권유하던 카오루의 모습들이 떠올랐다. 어떻게 그렇게 계속 거절 당하면서도 계속 웃으며 권유할 수 있었던 걸까? 안즈 자신은 다음에 또 보자는 말조차 입에서 꺼내기가 힘들었는데.


'그렇구나. 농담이었더라도 이런 건, 엄청 용기가 필요한 거구나.'


 진지하지 않은 권유더라도 늘 거절하는 상대에게 매번 같은 권유를 하는 데엔 많은 용기가 필요했을 것이란 걸 여태 생각하지 못했다. 늘 웃는 얼굴로 장난처럼 말해오던 그도 사실은 꽤나 많은 용기를 내고 있었을 것이란 걸, 정말 너무도 늦게 깨달아버렸다. 용기. 용기가 필요했다. 어쩌면 늘 먼저 한 발자국 다가와줬던 그에게 이번에야 말로 안즈가 먼저 한 발을 내딛을 차례인지도 모른다.


"미안! 나 잠깐 갔다올게!"


 마음이 급해 어디를 다녀오겠다는 건지도 말하지 않은 채 안즈는 카오루와 레이가 간 방향으로 내달렸다. 아직 멀리 가지 않았어야 할텐데. 안즈의 마음이 급했다. 이쪽 저쪽 살피며 뛰기를 몇 분. 안즈는 마침내 낯익은 청자켓을 발견했다. 다리가 긴 두 사람이었기에, 만약 그들이 대화를 나누며 걷지 않았다면 아마도 안즈는 그들을 따라잡지 못했을 것이다. 청자켓에 가까워질수록 안즈의 심장이 쿵쾅쿵쾅 심하게 뛰었다. 이 엄청난 심장박동이 그녀가 달렸기 때문만은 아니라는 것을 지금의 안즈는 잘 알 수 있었다. 조금만. 조금만 더 달리면 된다. 아주 조금만.


"카오루 선배!"


 그에게까지의 거리가 얼마 남지 않았을 때 안즈는 저도 모르게 카오루의 이름을 불렀다. 꽤 많은 인파 속이었지만 그들과의 거리가 멀지 않아서인지 카오루는 자신을 부르는 목소리에 발걸음을 멈춰 주변을 두리번 거렸다.


"선배!"


 마침내 그의 바로 뒤까지 온 안즈는 그의 옷소매를 붙잡았다. 예상치 못한 신체접촉에 카오루가 화들짝 놀란 얼굴로 돌아봤다. 이미 주사위는 던져졌다. 이렇게나 뛰어와서 붙잡아놓고선 "아무것도 아닙니다!"라고 말할 수 있을리도 없고, 그걸 듣고 "그래? 그렇구나!" 하고 넘어갈 사람도 없을 테니까.


"안즈쨩?"


 급하게 뛰어와 자신을 붙잡은 안즈가 숨을 몰아쉬며 가만히 있자 걱정되는지 카오루가 몸을 굽혀 안즈와 시선을 맞췄다. 회색빛이 도는 옅은 갈색의 눈이 걱정스레 그녀의 얼굴을 들여다봤다. 이젠 정말로 거부 당할 것을 각오하고 말을 꺼낼 때였다. 안즈는 쥐고 있던 카오루의 옷소매를 조금 더 세게 잡았다.


"머,멋진 미인이 되면 그땐, 그땐 정말로......"

"......구애할게. 사실 어느 때부터인가는 항상 진심이었지만. 그땐 정말 그 어느때보다 더 진심으로, 구애할게."


 처음엔 안즈가 갑자기 무슨 소릴 하는지 알아듣지 못한 채 그저 눈을 깜빡이며 안즈를 쳐다보고 있던 카오루는 이내 그녀가 하는 말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이해하곤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두 사람에게서 완전히 존재가 잊혀져버린 레이는 봄바람과 함께 찾아온 재미난 구경을 드라마나 영화를 보는 시청자 마냥 흐뭇하게 바라보고 있었다.


 3학년 유일의 프로듀서와 연예계에서 활발히 활동하기 시작한 졸업생이 사귀고 있단 소문이 교내의 아이돌들과 프로듀서들에게 퍼진 것은, 벚꽃이 막 지기 시작했을 즈음이었다.





* 보컬로이드 곡인 <Acute>와 <React>의 가사를 바탕으로 각색하여 쓰여진 연성입니다.

* 내용을 짤 때 けったろ(켓타로) & Φ串Φ(쿠시) & ベェェェェジュ(베쥬), 세 분이 부른 Acute -Reverse-를 참고했습니다.









[리츠안즈레이/리츠안즈이즈]










돌이킬 수 없는 < 1 >







W. 소담(@kimiga_iru)












 땅거미가 안개처럼 내려앉은 학교는 대부분의 학생이 하교를 한 탓에 낮 시간대의 시끌벅적함을 상상하기 어려울 만큼 적막했다. 언뜻 보면 아무도 없는 것같이 고요한 스튜디오엔 천장에 설치된 온풍기가 작동하는 소리와 연필의 사각거리는 소리만이 어렴풋이 들려올 뿐이었다.


"...안즈."


 적막을 깬 것은 소리를 낸지 한참은 된 것처럼 평소보다 낮게 가라앉은 리츠의 목소리였다. 리츠는 깨어난 그를 눈치채지 못한 채 오로지 기획서에만 눈길을 주고 있는 안즈를 한참을 멍하니 쳐다보다 그녀의 온기를 찾기라도 하는 것처럼 그녀의 이름을 불렀다. 검은 글씨가 빼곡할 하얀 종이에만 머물던 시선이 그를 마주하자 그는 여전히 누운 채로 몸을 움직여 그녀의 무릎에 자신의 머리를 얹었다.


"무릎베개..~"

"응."


 조금 전까지만 해도 버릇처럼 미간을 찡그리고 있던 얼굴에 그녀의 이름을 닮은 미소가 피어났다. 리츠는 가만히 그것을 바라보다 고개를 돌려 그녀의 품으로 파고들며 어리광을 부리듯 말했다.


"안즈가, 형님이랑 친한 거...... 싫어. 기분 나빠."


 혼잣말처럼 중얼거린 그 말은 혼잣말이라 하기엔 너무 컸다. 마치 그녀가 듣길 바라는 것처럼. 


"하지만 난 모두를 돕는 게 일인 프로듀서니까."

"응...... 알고 있어."


 리츠는 굳이 쳐다보지 않아도 그녀가 곤란한 듯 잔뜩 처진 눈으로 어색하게 웃고 있을 것이란 걸 알 수 있었다. 그가 그의 형인 레이와 안즈가 가까이 지내는 것을 질투할 때면 늘 그녀가 짓는 표정이었다. 마치 그녀가 "어쩔 수 없는 걸" 하고 말하는 것 같아서 리츠는 그녀의 그 표정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그녀가 형에게 호감을 갖고 있다는 걸 알고 있었기 때문에 더더욱.


 리츠는, 안즈는 나만 바라보면 돼, 라는 말을 침과 함께 꼴깍 삼켰다. 조금 씁쓸한 맛이 느껴지는 건 자꾸만 일그러져 가는 이 마음 때문이리라. 리츠는 눈을 꼭 감고 끌어안은 그녀의 체취를 깊게 들이마셨다. 그녀의 달콤한 체취에 흐릿하게 낯설지 않은 체취가 났다. 이 불쾌한 잡내없이, 안즈의 달콤한 체취 전부가 나만을 위해 있다면... 리츠는 조금 더 안즈를 바짝 끌어안았다.


 안즈는 자신의 품에 고개를 파묻은 리츠를 내려다봤다. 그의 얼굴이 보이지 않아 그가 어떤 표정을 짓고 있는지 그녀로선 알 수가 없었다. 다만 자신의 허리를 더 꽉 끌어안는 그의 행동에 상상만 할 뿐. 안즈는 몇 개월 전부터의 갈수록 악화되어가는 이 상황이 버거웠다. 그녀는 교내의 아이돌들 중 몇몇이 자신을 친구나 선후배 이상의 눈으로 바라보는 것을 언젠가부터 눈치채고 있었다. 하지만 그녀는 자신의 입장에 충실하고 싶었기에 그 감정들을 눈치채지 못한 척 해왔다. 모든 걸 받아주는 듯 하면서도 정작 연심은 눈치 못 챈 사람처럼 자연스럽게 거절하는 그녀의 태도에 그녀의 거절 의사를 알아챈 대부분의 아이돌들은 어느 순간부터 알아서 좋아하는 내색을 하지 않았다. 사쿠마 형제만 제외 한다면.


 형인 레이는 그녀에 대한 호감을 은근슬쩍 드러내곤 했다. 본인이 무언가를 할 때 그녀를 곁에 둔다거나 그녀가 할 일을 할 때 그녀의 곁에 머무는 식으로 그는 그녀에 대한 감정을 내비쳤다. 호감을 노골적으로 드러내는 것은 동생인 리츠 쪽이었다. 안즈는 처음엔 그가 자신에게 연애 상대로서 호감을 갖고 있다는 걸 몰랐다. 다른 사람들이 바보 같다고 할지도 모르지만, 그녀로서는 눈치채기가 어려웠다. 그는 그녀에게 마음을 연 후부터는 줄곧 무릎베개를 해달라고 조르거나 피를 달라고 조르는 등, 늘 어리광을 부려왔기 때문이다. 그녀는 그의 마음을 깨달은 후에 그가 자신에게 내비치는 진심을 에둘러 거절했다. 눈치가 제법 좋은 그는 그 완곡한 거절을 빠르게 알아채곤 한 발 물러나 자신이 안즈에 대한 사랑을 깨닫기 전처럼 그녀를 대했다. 적어도 그녀가 레이에게 호감을 갖고 있단 걸 눈치채기 전까진.


 안즈는 리츠의 형인 레이에게 선후배 이상의 호감을 갖고 있었다. 그 감정의 시작이 언제부터 였는진 그녀 자신도 알지 못했다. 호감을 드러내면서도 아슬아슬하게 선을 넘어오지 않는 그의 태도가 그를 더 궁금하게 만들고 그녀를 안달나게 만들었는지도 모른다. 아니, 어쩌면 전부 핑계고 그냥, 그에게 끌렸을지도. 누구라도 돌아볼 것 같은 수려한 외모의 그는 행동 하나하나가 우아하고 무게있는 기품이 넘쳤다. 그럼에도 그는 무대 위에선 전혀 다른 사람 같았다. 언젠가 한 번 무대 아래에서 그가 속한 UNDEAD의 무대를 지켜본 적이 있었다. 그때 마주쳤던 그의 눈빛을 안즈는 아직까지도 잊을 수가 없었다. 평소에도 그의 눈은 묘한 색기를 품고 있었지만 그때 안즈를 바라보던 눈은 욕망을 있는 그대로 표출하는 것 같은, 그런 눈이었다.


'아가씨를 원해.'


 그때 부딪쳤던 그의 시선에서 읽었던 것은 단지 그녀의 착각이었을까, 안즈는 궁금했다. 물론 완전한 착각은 아닐 거라는 건 그녀도 짐작하고 있다. 그럼에도 그녀는 자신이 지키고 싶은 선 때문에 그에게도 일정의 거리를 뒀다. 하지만 그녀의 이런 노력을 아는지 모르는지, 리츠는 안즈가 자신의 형에게 마음이 있다는 걸 알아챈 이후론 이전보다 훨씬 더, 그녀에게 어리광을 부리고 집착하기 시작했다. 다만, 그만의 룰인지, 안즈에게 직접적으로 레이를 좋아하는지는 묻지 않았다. 그래서 안즈도 굳이 그에게 자신이 누구에게 호감을 갖고 있는지 얘기하지 않았다. 어차피, 적어도 졸업 전까지는 레이와 이 이상의 관계 발전은 없을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레이 선배...'


 자신을 꽉 끌어안는 리츠를 바라보던 안즈는 가만히 고개를 들어올려 다시 기획서를 쳐다봤다.  마치 안즈가 어디 사라지기라도 할까, 그녀의 허리를 힘껏 끌어안고 있는 것에서 느껴지는 그의 집착과 다리에 느껴지는 그의 무게는, 아이러니하게도, 그의 형인 레이를 떠올리게 했다. 기획서의 그 어느 문장에도 제대로 시선이 머물지 못하고 있던 때 그녀의 고개를 무언가가 옆으로 돌렸다. 갑작스레 뺨에 느껴진 온기에 화들짝 놀라며 정신을 차린 그녀의 눈앞엔 조금 전까지만 해도 그녀의 품에 파고 들던 그의 얼굴이 있었다. 아련하게 흔들리면서도 분노가 엿보이는 눈. 안즈는 위험하다고 느꼈다.


"형님 생각, 그만해. ......지금 같이 있는 건 나잖아."


  지금까지완 달리 노골적으로 감정을 드러내는 그의 언동에 상황의 심각성을 깨달은 안즈는 고개를 뒤로 빼려고 했지만 그의 손이 그녀의 뒷머리를 손바닥으로 감싸 그 쪽으로 끌어당겼다. 퇴로가 막힌 그녀에게 그의 얼굴이 더욱 가까이 다가왔다. 그녀는 질끈 눈을 감았고, 바로 다음 순간 그녀의 입술에 그의 입술이 맞닿았다. 짧은 시간 맞댄 채 포개져 있던 입술을 그가 소리없이 떼어냈다. 천천히 감았던 눈을 뜬 안즈의 눈에 들어온 건 지근거리에서 그녀를 응시하고 있는 리츠의 석류처럼 빨간 눈이었다. 안즈는 그와 그녀 사이에 애매하게 끼어있던 자신을 팔을 움직여 그를 밀어내려 했다. 하지만 붉은 빛의 그의 눈엔, 창밖을 까맣게 물든 어둠처럼, 이제 막 족쇄에서 벗어난 욕망이 일렁이고 있었다. 다시 한 번 그의 얼굴이 다가왔다 쪽 소리를 내며 떨어졌다. 하지만 이내 그는 다시 그녀에게 키스했다. 안즈는 여태껏 단 한 번도 해본 적 없는, 그녀가 늘 어른들의 키스라고 생각해왔던, 그런 키스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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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너한테만 서툴지, 다른 건 다, 네가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교활하고 능숙해. 그건 네가 안 봤으면 좋겠어."


- 드라마, 밀회 中 -








 의자에 앉은 채 에이치에게 자신의 머리를 온전히 맡기고 있던 안즈의 입꼬리가 슬며시 올라갔다. 등 뒤에 있어 그녀의 얼굴이 안 보이는 것이 분명함에도 어떻게 알았는지 에이치는 그녀의 그 작은 변화까지도 당연한 듯 눈치챘다.


"왜?"


 다정한 목소리가 안즈에게 물어왔다. 올라간 입꼬리를 억지로 끌어내리며 위아래 입술을 겹쳐 입을 앙 다물고 있던 안즈는 참아왔던 즐거움을 토해내 듯작게 쿡쿡 거리며 "아니에요." 하고 답했다. 하지만 역시나 늘 그렇듯 "말해 봐." 하고 상냥한 목소리로 그가 그녀를 채근했다. 언제나 그랬다. 그는 그녀의 작은 것들까지도 전부 알고 싶어 했기 때문에 이런 상황의 끝은 늘 안즈가 삼켰던 말을 꺼내는 것으로 마무리 지어지곤 했다. "별 거 아닌데." 하고 운을 뗀 안즈는 자신의 머리카락을 열심히 그러모으고 있는 그를 살짝 돌아보며 말을 이었다.


"에이치 선배는 뭐든 완벽한데 의외로 이런 사소한 건 서투네요."


 그녀가 곱게 휜 눈과 부드러운 음성으로 하는 말이 지적이 아니란 건 파악했지만 그 말의 명확한 뜻을 이해하지 못해 에이치는 그녀에게 되물었다.


"이런?"

"머리 묶기 같은 거요."


 안즈의 대답을 들은 에이치는 그녀를 따라 쿡쿡하고 소리내어 웃었다.


"그치만 난 남자고 머리도 길지 않아서 머리를 묶어볼 일이 좀처럼 없는 걸. 그리고..."


 에이치는 뜸을 들이듯 말을 끊은 후, 자신의 손목에 끼고 있던 안즈의 머리끈을 손목 밖으로 끌어내 그녀의 머리를 한 갈래의 포니테일로 묶어주며 말했다.


"안즈. 난 네게만 서툴지, 다른 건 다, 전부... 너도 모르진 않겠지만 아마 네가 알고 있는 것, 네가 상상하고 있는 것보다도 훨씬 더, 그러니까, 네가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난, 많이 교활하고 능숙해."


 몸을 앞으로 살짝 숙인 것인지 귓가에서 속삭이듯 들려오는 다정한 목소리는 그 이상의 무언가가 녹아 있어서 마치 그녀가 전학 와서 혁명이라는 소용돌이에 휘말려 대면했던 '유메노사키의 황제 텐쇼인 에이치'를 떠올리게 했다. 묘하게 긴장하게 만드는 그 목소리에 안즈는 고개를 돌려 그를 쳐다보려 했으나 그는 그녀가 그럴 것이라는 걸 이미 예상했었는지, 그녀의 관자놀이 부근을 가볍게 잡아 그녀의 머리를 똑바로 고정시켰다.


"안돼, 돌아보지 마 안즈. 그런 모습은, 너만은 보지 않았으면 하니까."


 안즈는 얌전히 고개를 끄덕이며 자신이 하고 싶었던 말을 목구멍 안쪽으로 꾹 눌러삼켰다. 그녀 역시 그에게만큼은, 그를 만나며 그녀의 안에 어느샌가 싹 튼 검은 마음과 집착에 얼룩진 모습이 아닌, 귀엽고 믿음직하고 사랑스러운 모습만 보이고 싶었기에. 물론 그는 상상조차 하지 못하고 있을 테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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같은 대사를 가지고 로제(@tofu_rose_)님께서 쓰신 레이안즈는 이쪽 ↓↓↓



https://www.evernote.com/shard/s213/sh/d6c00d94-eef8-45ec-945f-fc0968a5a952/ac76ec59b7cbada0c5bb2f859d5cb247



- 안즈른 전력 스물 두 번째 : [연극]-

 

 

 

 

연극

 

 

 

 

W. 소담(@kimiga_iru)

 

 

 

 

 

"....내가 이렇게 안즈 아가씨에게 얘기한 걸 알면 필시 리츠가 화를 낼 테지만, 그리고 아가씨로서도 이 늙은이에게 이런 이야길 듣는 게 괜한 오지랖처럼 느껴질 테지만, 너그러이 이해해주겠나. 어린 동생을 아끼는 형의 마음이라고 말일세."

 

 레이는 여전히 개운치 못한 얼굴을 하고서도 고개를 끄덕인 안즈의 멀어져 가는 뒷모습을 복도의 창가에 기대어 가만히 응시했다. 계속 작아지던 그녀의 뒷모습이 모퉁이를 돌아 사라지고서도 그가 시선을 거두지 못한 채 멍하니 있는데 돌아보지 않아도 누군지 알 수 있을 목소리가 들려왔다.

 

"Amazing! 괜찮겠어요, 레이?"

 

 친구의 익숙한 목소리에 놀란 레이는 근래에는 보기 어려웠던, 미간을 팍 찡그린 매서운 눈으로 그를 쏘아보았다.

 

"몰래 남의 대화를 엿듣다니, 언제 그런 나쁜 버릇이 생긴 게지?"

"오야, 1년 전의 레이를 보는 것 같아 반가운 걸요"

 

 다른 사람들이었다면 압도될 법도 한 눈빛을 받고도 와타루는 그저 즐거운 듯 미소 지어 보일 뿐이었다. 그런 그의 싱글싱글 거리는 얼굴을 본 레이는 힘이 잔뜩 들어가 있던 표정을 풀고 한숨을 길게 내쉬곤 고개를 다시 안즈가 사라진 방향으로 돌려버렸다. 마치 와타루가 처음에 한 질문의 답을 피하려는 듯이.

 

"아직 당신과 동생 군에 대한 감정 사이에서 갈팡질팡하는 안즈 씨를 그렇게 동생 군 쪽으로 등 떠밀어줘도 괜찮겠어요, 레이?"

 

 하지만 와타루는 생각보다 집요했다. 애써 그 질문을 회피하려는 레이에게 와타루는 문제를 하나하나 짚으며 되물었다.

 

".........무슨 소릴 하는지 모르겠네만. 아가씨는 리츠 그 아이에게 꼭 필요한 사람이라 생각하네."

 

 레이의 답을 기다리며 그의 맞은 편 벽에 팔짱을 낀 채 기댔던 와타루는 레이의 대답을 듣고는 안즈가 갔던 방향으로 향했던 시선을 그에게로 돌렸다.

 

"그건 레이도, 마찬가지 아니던가요?"

 

 핵심을 찌르는 말에 레이는 맞은 편에 있는 와타루를 쳐다볼 뿐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았다. 시끄러운 그의 행동과 말에 많이들 눈치채지 못하고 지나치는 부분이지만, 그는 정말로 눈치가 빠른 사람이다. 와타루는 자신을 바라보는 레이의 눈을 가만히 들여다보더니 이내 생긋 웃으며 현란한 동작으로 어디에선가 장미꽃 한 송이를 꺼내어 레이에게 내밀었다.

 

"이제껏 레이가 이토록 연극에 재능이 있는 줄은 몰랐습니다"

"연극이라.... 리츠나 아가씨에겐 아무 말도 하지 말아줬으면 좋겠구먼."

"우후후. 레이. 관객은 무대 뒤의 사정까지 알 필요가 없는 법이지요. 당신의 히비키 와타루☆ 당신의 연극에 함께 어울려드리지요!"

 

 레이는 피식 웃으며 또 한 번 '연극이라...'하고 중얼거렸다. 여러 번의 고민과 결심 끝에 안즈에게 말을 꺼내놓고도 완전히 떨쳐내지 못한 미련인지, 레이는 다시 안즈가 간 방향을 잠깐 바라보았다. 당연하게도 이미 그녀는 없었다. 앞으로도 완벽한 '연극'을 하자고 다짐하며 레이는 와타루의 어깨 한 쪽을 지그시 한 번 주무른 후 그녀가 는 반대쪽 방향으로 걸음을 옮겼다.









- 안즈른 전력 스물 한 번째 : [동생]-

 

 

 

 

 


이런 동생이지만 잘 부탁합니다

 

 

 

 

W. 소담(@kimiga_iru)

 

 

 

 

 


 동생이 집에 여자애를 데려왔습니다. 다시 한 번 말할게요. 제 동생 타카미네 미도리가 집에 여자아이를 데려왔습니다!!!!! 다른 사람들이 보기에 제가 이렇게 호들갑 떠는 것이 이해가 되질 않겠죠. 왜냐하면 제 동생은 잘생겼기 때문이죠. 반반한 얼굴의 남자는 잘 찾아보면 얼마든지 있다고요? 아뇨. 비록 멍청하게 서류를 잘못 제출해서 유메노사키 학원의 일반과가 아닌 '' 아이돌과에 진학하게 된 멍청한 동생이지만, 실제로 아이돌을 지망하고 있거나 이미 연예계에 데뷔한 수많은 잘생기고 귀여운 얼굴의 남자아이들 속에 있어도 꿀리기는커녕 그 속에서도 한 눈에 들어올 정도로 잘생겼는걸요. 이건 형이라서 하는 얘기가 아니고 진짭니다.

 

 그런데 그렇게 잘생긴 동생이 여자친구를 집에 데려오는 게 이렇게 호들갑 떨 일이냐고요? , 맞습니다. 호들갑 떨 일입니다. 저 아이의 얼굴을 보면 물론 믿기지 않겠지만 저 녀석은 이제껏 여자 아이에 관심을 가진 적도 없고 여자친구를 사귄 적도 정말 단 한 번도 없습니다. 놀랍지 않나요? 물론 미도리를 좋아하는 아이들은 제법 있었던 것으로 압니다. 미도리가 가게를 도와줄 때면 젊은 여성 손님들이 많은 것만 봐도 알 수 있죠. 하지만 문제는 저 녀석이 또래의 여자에 관심이 없다는 것이었죠. 또래가 아니라면 연상의 아니면 연하의 여성에게라도 관심이 있으면 그냥 저 녀석이 그런 취향이구나~ 하고 안심했을 텐데, 미도리는 그런 것도 아니었죠. , 어쩌면 제가 모르는 곳에 야한 잡지를 숨겨뒀다거나 노트북의 어딘가에 그렇고 그런 게 가득한 폴더가 숨겨놓았을지도 모를 일이긴 하지만.... 그래도 저 녀석은 늘 유루캬라들에 너무 정신이 팔려 있어서 걱정입니다. 부모님들은 그런 동생을 보며 혀를 차시지만.. 솔직히 동생이 저렇게 된 건 모두 부모님의 탓이라고 생각합니다. 어렸을 적 천사처럼 귀엽게 생겼던 동생이 유루캬라 인형들을 안고 있는 모습이 사랑스럽다며 그렇게나 인형을 사주던 건 어느 야채 가게의 타카미네 부부였을까요.

 

 저번에는 일요일에 웬일로 일찍 일어나서 열심히 옷을 고르길래 여자친구랑 데이트라도 하는 줄 알고 기뻐했는데, 저녁에 귀가한 후에 자랑스럽게 보여주는 게 웬 유루캬라와 함께 찍은 스티커 사진이었습니다. 물어보니 학교의 선배에게 라이브가 성공하면 유루캬라 인형탈을 쓰고 데이트 해달라고 했답니다. 아니... 진짜 제정신인지... 이게 말이 됩니까?? 들어보니 그 인형탈을 쓴 아이는 신설된 프로듀서과의 유일한 학생이고 여자아이라던데... 진짜 얼굴도 모르는 그 아이에게 제가 다 미안할 지경이었습니다. 그 아이는 정말 하루 종일 유원지와 공원을 인형탈을 쓴 채로 함께 다녀줬다고 하더군요. 손은 잡았던 모양이긴한데, 동생이 그 인형탈 캐릭터의 이름으로 추정되는 이름을 말하면서 손을 잡을 수 있어 행복했다는 걸 보면... 그 아이가 아니라 유루캬라와 손을 잡을 수 있어 행복했던 모양이고요.

 

 그런데!! 오늘!!! 바로 조금 전!!! 동생이 또래의 여자아이를 집에 데려왔습니다. 미도리와는 키가 꽤 차이가 나 보이는 아담한 체구에 머리는 어깨 정도의 길이인 귀엽게 생긴 여자아이인데, 미도리가 선배라고 하는 걸 보면 그 학교 유일의 프로듀서라던 아이가 아닌가 싶습니다. 그렇다면 미도리의 침대에 한 가득인 인형들을 만들어준 것도 바로 저 아이겠군요.

 

 

"안녕하세요~ 안즈 씨라고 했던가요? 전 미도리의 형 타카미네..."

"형 뭐 하는 거야... 어서 나가!"

", 안녕하세요."

"반가워요, 안즈 씨! 뭐 하냐니, 미도리. 그야 두 사람이 좋은 시간 재밌게 보내라고 과자랑 차를 내온 거잖아."

"... 지금 무슨 소릴 하는 거야, ! 안즈 씨에게 실례잖아! 얼른 나가! 얼른!"

 

 

.............어라? 어라?? 동생에게 쫓겨났습니다. 평소의 저 너셕 특유의 느릿한 말투는 어디 가고 다다다다 쏘아대며 제 등을 밀어 저를 밖으로 내쫓았습니다. 거기다 그때 저 녀석 얼굴, 빨갰다고요? 그 동안 혹시 동생에게 유루캬라 인형들과 관련된 이상한 성도착 같은 것이 있는 게 아닌지 형으로서 내심 걱정이었는데 아무래도 걱정을 할 필요가 없었던 모양입니다. 제가 뭘 어쩐 것도 아닌데 안즈 씨를 제게서 지키기라도 하겠다는 듯이 앞을 막아서는 걸 보면 말이죠. 게다가 제가 방에 들어가기 전에 안즈 씨가 들고 있는 인형을 만지면서 자연스럽게 그녀의 손을 만지작 거리고 있던 것도 그렇고.

 

 장하다, 타카미네 미도리! 이 형아는 네가 유루캬라 이외의 것에 관심을 보이는 것 같아 아주 아주 기쁘다! 다음 번엔 유루캬라 인형탈을 쓰지 않은 안즈 씨와의 스티커 사진을 기대하마!! 이런 동생이지만 앞으로도 잘 부탁합니다, 안즈 씨!!






- 안즈른 전력 스무 번째 : [호기심]-

 



 

 

 

내가 궁금한 너의 얼굴

 

 



 

 

W. 소담(@kimiga_iru)

 

 






 

 

 안즈는 좋다. 말도 별로 없이 조용해서 수면 방해를 하지도 않고 푹 자게 해주는데다 부드러워서 뺨이라거나 팔이라거나를 만지면 마음도 편해진다. 거기다 안즈의 몸은 따끈따끈하고 좋은 냄새까지 나니까 오히려 안즈를 싫어할 이유를 찾가기 어렵달까~? 그리고 안즈는 내 어리광을 전부 받아줘서 좋다. 그 때문에 셋쨩한테 종종 한 소리를 듣기도 하지만, ... 별로 상관없달까? 그건 어차피 셋쨩이 안즈에게 나처럼 어리광 부릴 수 없으니까 괜히 부리는 심술이니까

 

 안즈는 차분한 착한 아이라서 평소엔 표정도 그리 많은 편이 아니다. 하지만 난 안즈의 많~은 표정을 알고 있다. 안즈는 나나 우리 막내가 어리광 부릴 때는 어쩔 수 없네~ 하는 미소를 짓고, ~군에게 여자아이의 옷을 들이밀 때나 마~군을 따르는 1학년의 볼을 꼬집을 꼬집을 때는 짓궂은 아이처럼 장난기가 가득한 얼굴을 한다. 프로듀스 노트를 들여다볼 때는 종종 미간에 주름이 잡힐 정도로 진지한 얼굴을 하고 있고, 내가 피를 달라고 조를 때의 눈썹이 저 밑의 바닥까지 내려가지 않을까 싶을 만큼 미안한 얼굴을 한다. 늘상 잔소리를 하고 혼내는 셋쨩이나 쿠누기 선생님이 드물게 칭찬을 하면 눈에 보이게 기뻐하면서 입꼬리를 씰룩 거리기도 하고, 엣쨩 앞에서는 입술을 눌러 다물고는 긴장한 얼굴을 한다. 그리고 자기가 프로듀스 해주고 있는 유닛들이 노래하고 있는 무대를 볼 때면 그 어느 때보다 행복한 얼굴을 한다. 으음~ 유독 마~군네 유닛의 무대에 더 좋은 표정을 하는 것 같은 건 그냥 내 기분탓?

 

 그런데 이렇게나 많은 안즈의 표정을 알고 있는데도, , 아직 보지 못한 안즈의 표정이 있는 것 같아.

 

"-~"

 

 

 즐거운 무언가를 떠올린 듯 장난기가 진하게 어린, 반달 모양으로 휜 눈으로 미소 지으며 리츠는 몸을 일으켜 자신과 그녀의 사이를 기획서로 가로막고 있던 그녀의 팔목을 잡아 방해가 되지 않도록 옆으로 옮겼다. 그리고는 갑자기 무슨 일로 그가 그러는지 파악하지 못해 눈을 끔뻑이고만 있는 그녀를 향해 곧게 몸을 뻗었다.

 

 

 -, , 내가 키스하면 어떤 표정을 지을까나~

 

- 안즈른 전력 열아홉 번째 : [앨범]-

 

 



 

그 시절 내가 좋아했던 소녀

 

 

 




W. 소담(@kimiga_iru)

 

 

 

 

 

 

"치아키~ 어서 출발하지 않으면 「늦고」 말 거예요."

"아아, 카나타. 곧 갈 테니 먼저 내려가 있어줘. 거기 차 키 있으니까."

 

 현실로 나를 다시 불러온 것은 카나타였다. 문가에 서 있을 그에게 들고 있는 앨범이 보이지 않도록 퍼뜩 놀라 우스운 꼴로 움찔거렸던 어깨를 움츠렸다. 하지만 의외로 눈치가 빠른 그는 분명 내가 방금까지 무엇을 하고 있었는지 알아챘을 것이다. 하지만 그는 아는 내색을 하지 않을 것이다. 원래 그런 친구니까.

 

"알았어요~ 하지만 오늘은 「중요」한 날이니까 「얼른」 내려와야 해요~"

"아아."

 

 발소리가 멀어지는 것을 확인하기 위해 고개를 돌리자 열려진 방문 밖에는 아무도 없었다. 추억을 되짚는 것은 나쁜 행동이 아니다. 하지만 어쩐지 '오늘' 그녀와의 추억을 되짚었다는 사실을 다른 누군가가 알게 된다면 상대가 나를 비난할 것만 같았다.

 

 카나타가 간 것을 확인한 나는 고개를 다시 돌려 보고 있던 앨범으로 다시 시선을 옮겼다. 라이브 때마다 공연이 끝난 뒤 모두가 함께 모여 찍었던 사진들을 모아 만든 앨범은 나를 그때 그 시절로 돌아가게 하기에 충분했다. 어느 사진 한 장 예외 없이 우리는 모두 태양보다 더 밝게 웃고 있었다. 사진 속 땀 범벅인 채로 옹기종기 가까이 모여 선 우리의 곁에는 당연한 듯 그 아이가 있었다. 남자애들이 흘린 땀이 자신에게 닿는 것이 싫을 법도 한데도 그 아이, 안즈는 그런 건 전혀 개의치 않고 우리의 옆에 바짝 다가서서 사진을 찍곤 했다.

 

 사진으로 보지 않아도 모조리 기억하고 있는 행복했던 고교 3학년 때의 일들을 사진 한 장 한 장을 통해 되짚으며 앨범의 마지막 장을 넘겼다. 마지막 장의 사진은 다른 페이지의 사진들과 달리 사진 속에 찍힌 인물은 두 사람 뿐이었다. , 그리고 그 아이, 안즈.

 

 졸업식날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단 둘이 찍었던 그 사진 속에서 안즈는 눈가가 발개진 채 미소 짓고 있었다. 정이 많고 마음이 따뜻했던 그녀는 졸업자 한 명 한 명에게 꽃다발을 건네고 감사인사를 전해왔었다. 진짜 감사인사를 해야 하는 것은 오히려 내 쪽이었기에 그냥 돌아서는 그녀를 불러 함께 사진을 찍자고 했었다. 눈이 약간 붓기 시작했던 얼굴로도 활짝 웃으며 V 사인을 그리며 내 팔짱을 껴왔던 그녀의 모습이 바로 어제의 일처럼 눈에 선하다.

 

 마지막으로 사진 속의 안즈를 손끝으로 더듬어 짚은 후에 앨범을 닫았다. 앨범이 원래 있던 자리에 그것을 도로 꽂고는 아까까지만 해도 빳빳하게 잘 다려져 있던 양복 바지의 무릎 부위를 손으로 문질러 폈다. 조금씩 도로 펴지는 쭈글쭈글해진 양복 바지의 주름처럼 그녀에 대한 나의 미련도 하나씩 펴지면 좋을 텐데. 지금껏 수도없이 모두에게 꿈과 희망, 그리고 용기를 줄 수 있는 히어로가 되고 싶다고 떠들어왔는데, 실상 나는 내 마음 하나 제대로 전하지 못하는 겁쟁이의 가짜 히어로인 것이다. 왜 그때의 나는 아픈 날에 나를 간병도 해주고, 정성 가득한 수제 도시락을 싸줬으면 하는 귀여운 여자친구가 그 애라고 솔직하게 말하지 못했던 걸까. 왜 그때의 나는 그녀가 다른 사람과 스스럼없이 포옹하는 모습을 보는 게 거북했던 이유를 그녀에게 솔직하게 말하지 못하고 눈치채지 못한 척 했던 걸까. 그때의 내가 조금 더 솔직했더라면, 졸업식날 두 번째 단추를 결국 내 주머니에 도로 집어넣지 않고 너에게 주었더라면... 우리의 오늘은 조금 달랐을까?

 

 신발장 앞의 전신 거울을 통해 깔끔하게 뒤로 빗어 넘긴 머리와 양복의 옷매무새를 점검하고 고쳤다. 조금 있다가 보게 될 안즈는 틀림없이 이제껏 내가 봤던 그녀의 그 어떤 모습보다도 아름다울 것이다. 그리고 그녀는 분명 여느 때와 다름없이 활짝 미소 지으며 나를 반겨주겠지. 그러면... 그러면 나는 고교시절 그때처럼, 그녀의 드레스가 망가지지 않는 최대한으로, 꼭 그녀를 끌어안아줘야지.

 

 결혼, 진심으로 축하한다. 그 시절 내가 좋아했던 나의 첫사랑, 우리의 프로듀서, 안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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