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색의 코르다, 후유우미 쇼코 × 히노 카호코.
2009.02.02 작성.
예전에 분명 쓸 때는 나름의 반전을 주고 싶어하며 썼던 것 같은데, 결과는 반전 없는 것이 반전.
아, 저. 안녕하세요. 원래 이 종교를 믿는 사람도 아닌데 여기에 와도 되는지 잘 모르겠어요. 그렇지만 이곳밖에 없어요, 저의 마음을 털어놓을 수 있는 곳은. 저는. 저는 죄를 지었습니다. 조금 길더라도, 들어주시겠어요?
달지 않은 슈거파우더
W. 소담(@kimiga_iru)
저의 이야기는 오래 전으로 거슬러 올라가요. 제가 고1때이니 8년 전이네요. 지금도 여전히 부끄럼도 많이 타고 다른 사람들과 쉽게 말을 못하지만, 고등학생 때는 더 심했어요. 그때, 저는 한 사람을 만났어요. 그 분과는 우연히 알게 되었어요. 교내 콩쿠르 참가자로서 알게 되었거든요. 뛰어난 실력의 수많은 음악과 학생들 중에서 제가 7명의 참가자 안에 들고, 역시나 보통과에서 뽑혀서 참가하게 된 그 분과의 만남은-. 제 실력은 그다지 뛰어나진 않았어요. 그렇지만 그 사람은 굉장히 멋진 사람이었어요. 그 사람의 연주에서는- 그래요 감정이, 마음이 느껴졌어요. 사실 그 분은 기술적으로는 그리 뛰어난 편이 아니었어요. 하지만 감성적인 면에서는 굉장히 뛰어났어요. 콩쿠르에서 우승한건 바이올린을 연주하는 다른 선배인데, 그 선배의 연주는 정말 훌륭해요. 하지만 저는 앞에서 말했던 그 분의 연주가 더 좋았어요. 눈치 채셨는지도 모르겠지만 저는 그 분을 좋아 아니 사랑해요. 그냥 친구라거나 가족에게 느끼는 그런 감정이 아니에요. 저는 그 분을 정말로- 정말로 좋아해요. 사람을 사랑하는 게 무슨 죄냐고 하시겠죠. 맞는 말이죠. 그런데 그 분이 여자-라는 말을 해도 모두들 저를 격려해줄까요. 결혼한 사람을 사랑하는 것도 아니고, 단지 저와 같은 염색체를 가지고 있는 사람을 사랑하는 것뿐인데 말이죠. 나쁘다거나 비정상이라거나 그런 게 아니라 그냥 그 분을 좋아할 뿐인데.
제가 다른 사람들과 ‘다르다’는 것을 깨달은 것 역시 고1때였어요. 콩쿠르가 끝날 무렵이었는데 음, 제 3셀렉션 쯤이었을거에요. 아, 제 3셀렉션이라는 건- 3번째 시합같은 거라고 할까요. 교내 콩쿠르는 학교 전체의 행사인데도 늘 음악과 학생들만의 행사였어요. 제가 다닌 학교는 보통과와 음악과로 나뉘어진 학교였는데 서로 건물도 다르다보니 거의 별개의 두 학교 같은 느낌이었거든요. 그런데 그 분이 콩쿠르에 참가하게 되면서 일반과 사람들도 콩쿠르에 관심을 가져주었어요. 모두 그 분 덕이였죠. 정말 굉장한 사람이에요. 나중에 그 분의 연주에 어떤 비밀이 있었다는 소문이 돌긴 했지만, 저는 그것이 선배의 연주가 맞다고 생각해요. 아- 죄송해요. 제가 생각하고 있는 부분을 제대로 전달하기가 어렵네요.
아무튼 콩쿠르가 학교 전체의 화제가 되면서 평소에 혼자 지내던 제 주위에도 사람들이 많아졌어요. 남학생들의 경우 저를 응원해주는 말을 많이 해줬어요. 그때는 남자기피증이 한창 심했기 때문에 제대로 대꾸도 못하고 벌벌 떨었지만, 지금 생각해보면 너무 고맙고 미안해요. 물론 제게 다가오는 여자애들도 많았어요. 그렇지만 이 애들은 다른 콩쿠르 참가자들에 대한 이야기를 듣고 싶어 하는 경우였죠. 콩쿠르 참가자는 저를 포함해서 총 7명이었는데, 저와 그 분을 빼고는 모두 남자였는데다, 다들 인물이 좋았고 거기다 악기까지 잘 다루니 그 모습이 여자애들에게 어필되었던 거죠. 아, 물론 저도 그 선배들을 좋아했어요. 지금도 그 분들과 서로 연락하고 지낼만큼 친하지만 그땐 그렇지도 못했어요. 사실 그분들은 지금이나 그때나 변함이 없답니다. 제게 말도 걸어주시고 참 자상히 대해줬어요
다만, 말씀드렸던 남자기피증 때문에 제가 그 분들이 내밀어준 손을 못 본척하고 뒤로 물러나곤 했어요.
그래서 고1때의 저는 선배들에 대해 잘 몰랐어요, 그러다보니 주위에 모여든 여자아이들의 욕구는 충족시켜줄 수가 없었어요. 저는 늘
그 여자선배에 대한 이야기만 했어요. 주변의 애들은 저도 미처 눈치 채지 못했던 제 마음을 잘 알아차리더라구요. 그래서 교내엔
한동안 제가 동성애자라는 소문이 돌았어요. 저는 그 소문을 듣고 어찌할 수가 없었어요. 부정하기엔 제 마음이 너무…그랬거든요.
그렇다고 인정할 수도 없었어요. 그런데, 그 소문을 듣고서 선배가 그것을 쑥덕거리던 애들에게 엄청 화를 내시더라구요. 어떻게
그렇게 모함을 할 수 있느냐면서. 제가 진짜 동성을 좋아한다고 해도 그뿐이라고- 다른 사람들이 어떻다고 평가할 순 없는거라고-.
다른 선배들도 나서서 도와주셨어요. 그 남자선배들 중 한 분은요, 그런 소문은 남자친구가 생겨야 사라진다면서 저와 사귀는 척도
해주셨어요. 그래서 지금도 다른 남자선배들보다 그 남자선배와 더 친하게 지내고 있어요.
그 선배- 그러니까 제 가짜 남자친구였던 그 분은 트럼펫을 전공하셨는데요, 그냥 트럼펫 선배라고 할게요. 트럼펫 선배와는 커플행세를 때문에 같이 있는 시간이 늘었었죠. 어느 날 방과 후에 그 선배와 함께 어떤 카페에 갔었는데, 그 곳에 좋아하는 사람과 와본 적이 있다면서 엄청- 여태껏 한 번도 본 적 없을 정도로 행복한 미소를 지으시더라구요. 그 카페는 제가 그 트럼펫 선배를 안내했던 곳인데, 저도 제가 좋아하는 그 분께 추천 받은 곳이었거든요. 그래서 알았죠, 트럼펫 선배가 좋아하는 사람이 그 여자선배라는걸요. 물어봤더니 엄청 당황하시면서 얘기해주셨어요. 그 후로는 트럼펫 선배는 자신의 짝사랑에 대해 제게 곧잘 말해주시곤 했어요. 남자시지만 정말 귀여운 분이세요. 저는 그 선배의 이야기를 들으며 굉장히 공감했어요. 사실 말하자면, 트럼펫 선배 덕에 제가, 그 여자선배를 좋아한다는 걸 알게 되었다고 하는 게 맞을거에요.
그 이후로는 쭈욱 마음속에서 그 여자선배에 대한 감정을 키워왔어요. 쉽게 꺼내 보일 수가 없는 마음이었으니까요. 하지만 딱- 딱 한번 있었어요. 그 선배가 졸업할 때였는데, 저는 그 분에게 선배가 졸업하는 것이 싫다고 했어요. 나중에 기회가 된다면 선배와 함께 살고 싶다고. 선배는 그때 미소를 지으며 저를 안아주셨어요. 등도 토닥여주셨구요. 저는 그때 생각했었어요. 아- 선배는 그저 후배의 귀여운 투정으로 들으셨구나, 하고요. 물론 그 후로도 계속 연락하며 지냈어요. 자주 만나서 밥도 먹고, 영화도 보고, 어디 여행가고, 저희 집에 오셔서 자고 가시기도 했고요. 그런데- 그런데 말이죠. 어느 날 선배가 제가 청첩장을 주셨어요. 그것을 받는데 정말…정말 가슴이 철렁했어요. 숨이 콱 막혔어요. 정말이지 눈물이 고이는 걸 참느라 힘들었어요. 다른 사람의 청첩장을 받고서 울 순 없잖아요. 간신히 풀러 본 청첩장에는 제가 아는 사람의 이름이 적혀있었어요. 그 여자선배와 동갑인 분인데, 그 분 역시 선배처럼 일반과셨어요, 피아노를 치셨는데, 그 분의 체격에 비해 굉장히 섬세한 소리를 내시는 분이었죠. 그 여자선배는…제게 미안하다고 하셨어요. 저는 축하드린다는 말밖에 할 수 없었구요. 그 짧은 말을 하는게 정말 힘들더군요. 저번에 카호 선배가- 아….제가 좋아하는 분의 이름이에요. 무심결에 말해버렸네요. 여태껏 일부러 ‘그 분’이라고 얘기해온 의미가 없어졌네요-. 아, 그러니까 카호 선배가 제게 부탁하시더군요, 자기 웨딩 케익을 만들어달라고. 저, 쿠키나 케익을 만드는 게 취미거든요. 하지만 어떻게 제게 그런 부탁을 하실 수 있을까, 그런 생각밖에 들지 않았어요. ‘카호 선배가 내 마음을 모르기 때문이다’, ‘그만큼 나를 신뢰하고 있다는 소리다’ 하고 간신히 마음을 붙잡았죠. 어떻게든 최고의 웨딩 케익을 만들어야겠다고 생각했어요.
하아- 그런데 말이죠. 어제 카호 선배가 제게 줄 것이 있다면서 만나자고 하셨어요. 한창 결혼 준비로 바쁠 텐데 웬일인가 싶었죠. 선배는 어제 제게 일기장을 주셨어요. 자기가 계속 써왔던 일기장들 중 고등학교 시절의 것들이었죠. 원래 무언가를 꼼꼼히 적는 성격이 아닌데 바이올린을 시작하고, 콩쿠르에 참가하게 되면서 답답한 마음에 적기 시작했다고 하셨어요. 저는- 왜 선배가 그 일기장을 제게 주는 것인지 이해가 안됐어요. 아니, 사실 지금도 잘 이해가 안돼요. 그런데 카호 선배는 꼭 받아주었으면 좋겠다고 하시더군요. 더 이상 자기가 가지고 있을 순 없다면서. 왜 선배가 그렇게 얘기했던 것인지는 집에 와서 알 수 있었어요. 선배의 고교시절 일기장을 보는 것은 굉장히 설레는 일이었어요. 좋아하는 사람의 생각이 고스란히 적혀있는 것이니까요. 페이지를 몇 장 넘기다가 저는 얼어버렸어요. 일기장엔… 일기장엔- 죄송합니다. 목이 메네요. 선배의 일기장엔 제 이름이 많았어요. 굉장히 굉장히-. 다른 여느 선배들보다도 많았죠. 저와 함께 했던 일들이 세세히 적혀있었어요. 그걸 보고서 알았어요, 선배 역시 8년 전부터 저와 같은 마음이었다는 걸…. 진작 알았다면 좋았을 걸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왜 내 마음을 표현하지 못했던 것인가에 대한 후회도 들었고요. 하지만 제 마음을 표현하고- 선배의 마음을 알았다고 해도 결과가 바뀌었을 거란 보장이 없네요. 두 사람 모두 부모님으로부터 시집가라는 잔소리를 계속 듣게 됐을 테니까요. 선배가 주신 일기장의 마지막 권, 마지막 페이지는 선배가 졸업하는 날에 쓰여 진 것이었어요. 역시나 제가 했던 말이 적혀있었어요. 자기는 진심으로 저와 함께하고 싶다고. 저의 마음이 궁금하다고- 자기를 이상하게 볼까봐 무서워서 물을 수가 없다고…. 어쩜 저와 선배는 8년 동안 같은 생각을 해왔을까요. 그저 약간의 용기만 있었더라도 덜 아쉬울텐데.
저는 잘 모르겠어요. 선배가 그 일기장을 왜 이제 와서 제게 주셨는지. 아무리 고민 해봐도 이해가 가질 않아요. 피아노 선배와 결혼하기 때문일까요? 확실히 신랑 이름보다 다른 여자아이의 이름이 많이 적힌 일기장을 신랑이 발견한다면 곤란하겠죠. 그 선배가 아시면 안되니까-. 아니면 저에 대한 마음을 정리하려고? 카호 선배의 의도가 어느 쪽이건 간에 저는 싫어요. 차라리 피아노 선배가 알아채 주셨으면 하는 마음도…들어요. 여자이기 때문에- 제가 여자여서. 남자이고 싶어요, 정말. 몇 번을 이런 생각을 했는지 몰라요. 어째서 저와 카호 선배는 함께할 수 없는 걸까요. 제가 카호 선배를 좋아하는데- 카호 선배가 저를 좋아해주는데-. 왜 저는 다른 남자선배들처럼 떳떳하게 마음껏 선배를 좋아할 수 없는거죠.
저는 죄를 지었어요. 저는 해서는 안 될 행동을 했어요. 내일 모레면 피아노 선배와 카호 선배는 결혼합니다. 케익은- 이미 만들었어요. 그런데- 저는 거기에 넣어선 안 될 것을 넣어버렸어요. 저는 미쳐가고 있어요. 선배에 대한 사랑이 넘쳐서 이제는 추잡한 광기로… 변하고 있어요. 다시 케익을 만들려고 재료는 이미 모두 사두었어요. 다시- 다시 두 선배의 케익을 만들어야 하는데. 만들어야 하는데… 마음 한 구석에선 차라리 함께 죽어버리자는 생각이 자꾸 맴돕니다. 의도를 알 수 없는 선배의 일기장을 보고 제 멋대로- 선배는 나와 함께 죽고 싶은 거라고 착각이라도 하고 있는 걸까요.
저는… 어떻게 해야 하는 걸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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