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안즈른 전력 열두 번째 : [불꽃놀이]-
이 여름의 추억
W. 소담(@kimiga_iru)
해가 긴 한여름, 어둠에 물들기 전의 하늘은 붉게 빛나고 있었다. 교실에 홀로 앉아 바느질에 열중하고 있던 안즈는 새가 날아가며 우는 소리에 잠시 고개를 들어 창 밖을 바라보았다. 문득 오늘이 옆 마을의 축제라는 것이 생각났다. 집중하느라 굳어져있던 그녀의 얼굴에 엷게 미소가 떠올랐다. 작년 이맘때는 이전에 다니던 학교의 친구들과 함께 축제에 참가했었다. 유카타를 입고 만나 노점에서 파는 야키소바를 먹고, 사과사탕도 먹고, 금붕어 잡기도 했었다. 즐거웠던 기억을 떠올리며 창밖의 기울어가는 해를 바라보던 안즈는 다시 자신의 손에 들린 천으로 시선을 옮겼다. 지금은 축제나 놀러 다니고 할 때가 아니지. 그녀는 생각했다.
"여기 있었네. 괜히 여기저기 찾아 다녔잖아. 완전 짜증나."
소매 부분을 다 마무리 지어갈 무렵 혼자뿐이던 무섭도록 조용한 교실에 누군가의 목소리가 울려퍼졌다. 깜짝 놀라 안즈는 실수로 검지 손가락의 중앙 부분을 있는 힘껏 바늘로 찔러버렸다. 아야야, 하며 안즈는 피가 방울져 나오는 손가락을 무의식적으로 입으로 옮겨갔다. 비릿한 피를 입속으로 빨아들리며 안즈는 고개를 돌렸다. 역시나 그녀가 예상하고 있던 사람이 서 있었다. 사실 이 학교에 저런, 가끔 사람을 이유 없이 기분 나쁘게 하는 말투의 사람은 딱 한 명 뿐이다.
"세나 선배. 무슨 일로...?"
"갈 데 있으니까 어서 짐 챙겨."
"네?"
"아아, 완전 짜증나. 얼른얼른 움직여!"
자신을 찾고 있었던 것 같은 그에게 무슨 일이냐고 물으니 다짜고짜 갈 곳이 있으니 짐을 챙기란다. 일단 무슨 일인지 얘기해주셔야죠, 라는 말이 턱 끝까지 차올랐지만 안즈는 그 말을 침과 함께 꿀꺽 삼켰다. 분명 그렇게 말했다간 또 어마어마한 폭언이 뒤따를 것이 틀림없다. 딱히 자랑은 아니지만 수 차례의 경험으로 터득한 생활의 지혜 같은 것이었다. 짐을 가방과 보조 가방에 거의 구겨 넣으며 안즈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교실 문에 팔짱을 낀 채 기대고 있던 이즈미는 작게 읏챠, 하는 소리를 내며 몸을 곧추세웠다.
"느려~"
투덜대는 미운 소리를 하면서도 그는 그럭저럭 기분이 좋아 보였다. 안즈가 옆으로 오기도 전에 그는 계단 쪽으로 걷기 시작했다. 안즈는 조금 빠른 걸음으로 서둘러 그 뒤를 쫓아갔다.
"그런데 어디 가는 거예요, 선배?"
"갈 데가 있다니까? 잔소리 말고 얼른 헬멧이나 써. 이러다 늦으니까."
"앗 네!"
받아 든 헬멧을 쓰고서 안즈는 이즈미의 스쿠터 뒤쪽에 탔다. 아마 이 스쿠터를 얻어 타는 것도 네 번째 정도 되는 것 같지만 살기 위해서라도 이즈미의 허리를 꼬옥 끌어안아야 한다는 점 만큼은 좀처럼 익숙해지질 않았다.
"시..실례합니다."
안즈가 자신의 허리를 단단히 붙잡는 것을 확인한 이즈미는 스쿠터에 시동을 걸고 출발했다. 그렇게 안즈는 목적지도 알지 못한 채 이즈미에게 몸을 맡겼다. 눅진한 바람이 안즈의 뺨을 간지럽혔다. 어정쩡하게 이즈미의 등으로부터 몇 센티미터 정도 거리를 두고 있던 그녀의 귀에 작게 콧노래 소리가 들려왔다. 어쩐지 이 사람 오늘 너무 기분이 좋아 보인다. 익숙하지 않은 모습에 괜시리 불안감을 느끼며 안즈는 스쿠터가 멈추기만을 기다렸다.
"에..."
스쿠터가 멈춘 곳은 사람들이 일부러 마련해 둔 것 같은 간이주차장이었다. 그것도 옆 마을 축제를 위해 마련된 간이주차장.
"의뢰라도 들어온 건가요?"
"무슨 헛소리야?"
"일 아니에요?"
"내가 언제 일이라고 했어? 하여간 완전 짜증난다니까."
미간을 찌푸리면서 과장된 한숨을 내쉰 그는 '안즈' 하고 그녀의 이름을 불렀다. 돌아가는 상황을 아직 이해하지 못한 그녀는 멍한 얼굴로 그의 곁에 다가갔다. 그녀의 오른손에 들려있던 보조가방이 후욱 들리더니 어느새 그의 오른손으로 옮겨갔다. 안즈의 눈이 느리게 가방의 움직임을 쫓는데 비어버린 그녀의 손에 따뜻..하다기보다는, 계절이 계절인 만큼 조금 과하게 뜨뜻한 무언가가 닿았다.
"미아가 되면 찾으러 다니기 짜증나니까."
묻지도 않았는데 변명처럼 말을 덧붙이는 그의 모습이 어쩐지 우스워 안즈는 작게 소리 내어 웃었다.
"건방져."
그렇게 말하면서도 이즈미는 안즈의 손을 조금 더 힘을 주어 잡았다.
"여기가 괜찮아 보이네."
안즈는 신사로 올라가는 돌계단의 중간에 걸터앉는 이즈미를 보고는 그 옆에 나란히 걸터앉았다. 연신 덥다고 투덜대며 그는 셔츠의 목 부분을 잡고는 가볍게 펄럭였다. 안즈는 들고 있던 그의 몫의 빙수를 건넸다.
"하여간 일본의 여름은 빌어먹게도 덥다니까. 더운 주제에 습하기까지 하다니. 최악이네~ 진짜 완전 짜증난다니까!"
그러게요, 하고 맞장구 치며 안즈는 딸기맛 시럽이 뿌려진 붉은 빛깔의 얼음을 크게 떠서 입으로 밀어 넣었다. 달콤한 맛과 시원함이 입안에 퍼져 절로 미소가 지어졌다.
"세나 선배."
"뭐?"
물고 있던 플라스틱 수저를 빼며 그가 답했다. 안즈는 단정하고 예쁜 그의 얼굴을 똑바로 바라보며 살짝 고개를 숙였다 들었다.
"갑작스럽긴 했지만 오늘 감사했어요."
"뭐, 가끔은 이런 것도 나쁘지 않다고 생각하니까."
'펑', 그런데 갑자기 웬 축제냐며 물으려던 찰나 어두운 하늘에 밝은 빛이 피어났다. 몸을 옆으로 돌려 이즈미를 바라보고 있던 안즈는 자세를 고쳐 앉고는 연속적으로 하늘을 예쁘게 수놓는 볼꽃들을 바라봤다.
"안즈."
불꽃이 피어나고서 다시 다음 불꽃이 쏘아 올려지기 전의 그 잠깐의 순간에 옆에서 자신의 이름을 부르는 목소리가 돌려 안즈가 고개를 돌렸다.
뻐끔뻐끔 그가 뭐라고 말하는 것이 보였지만 다시 하늘로 쏘아 올려진 불꽃이 터지는 소리에 그가 하는 말이 들리지 않았다. 네? 하고 안즈가 크게 되물었다.
"ㅡ한다고!"
"네?"
"ㅡ한다고!"
"뭐라고요? 잘 안 들려요!"
이 바보 같은 짓을 두어 번 더 했다. 평소였으면 이미 잔뜩 성질을 냈을 그는 어쩐지 이 바보 같은 상황을 재미있어 하는 듯 보였다. 축제에 이토록 들뜨는 사람이었나 하고 생각하며 안즈가 다시 되물으려는데 갑자기 그녀의 교복셔츠의 반팔 소매 끝이 잡아당겨졌다. 기우뚱 오른쪽으로 몸이 기우는데 비슷하게 옆에 있는 이즈미의 몸이 그녀 쪽으로 기울어져 왔다.
"좋아한다고."
귀 바로 옆까지 왔던 그의 얼굴이 그녀와 점점 거리를 벌리며 멀어져 가는 걸 안즈는 놀라서 크게 뜬 눈으로 쫓았다. 이 와중에도 계속해서 하늘을 수놓는 불꽃들 때문에 그의 얼굴이 어둠으로 물들었다 다시 보이기를 반복했다. 뭐라고 대답해야 하지? 반짝이는 아쿠아 블루색의 눈동자를 마주 바라보며 안즈는 생각했다.
"어, 어... 저도...요...?"
"뭐야. 건방져."
엣?! 뭘 어쩌라고!, 라고 생각했지만 굳이 그걸 입 밖으로 내진 않았다. 이즈미가 드물게 눈에 보일 정도로 좋은 얼굴을 하고 있으니까. 얼른 저기나 봐, 라는 것처럼 그가 하늘을 가리켰다. 그의 말대로 안즈는 이제 막바지로 향해 달려가는 불꽃놀이로 눈을 돌렸다. 불꽃놀이가 처음 시작했을 때보다 불꽃들이 더 예뻐 보이는 건 그저 착각일 뿐일까? 라고 안즈는 속으로 생각하며 손을 뒤집어 자신의 손을 감싸려는 듯 덮고 있던 이즈미의 손을 마주 잡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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