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아이츄 전력 서른 다섯 번째 : [기념일] -

 

 

 

 





 

우리의 기념일

 

 

 




 

W. 소담(@kimiga_iru)

 

 

 

 

 

 

 중학교 3학년이던 나는 지역의 유명한 사립 중학교를 다니던 모범생이었다. 특별히 머리가 좋았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그저, 특별한 목표나 하고 싶거나 좋아하는 것이 없었기 때문에 부모님이 기뻐하시는 공부에 열중했을 뿐이었다. 학교와 학원을 오가며 공부하는, 도수 높은 두꺼운 안경을 쓴 존재감 0의 너드. 이게 당시의 나였다.

 

 우리의 첫만남은 그야말로 운명과도 같았다. 중간고사가 끝났던 어느 일요일의 어느 날, 나는 내 유일한 취미였던 라이브 하우스에 갔었다. 그리고 거기서 너를, 만났다. 그 날은 내가 좋아하는 밴드 이외에도 다른 여러 가수들이 무대에 올랐다. 너도 그 중 하나였다. 데뷔한 지 얼마 되지 않은 신인 여자 아이돌이라고 소개된 너는 내 또래 정도로 밖에 보이지 않았다. 꽤나 많은 사람들을 앞에 두고도 너는 떠는 기색 없이 밝게 웃으며 자기를 소개했고 너의 노래를 했다. 귀여운 안무와 네 미소처럼 밝은 그 노래는 단숨에 내 마음을 훔쳤다. 두 곡은 정말이지 너무 금방 끝나버렸다. 무대를 마친 너는 오늘 와줘서 고마웠다며 객석을 바라보며 미소 짓고 꾸벅 인사를 했었다. 그래, 그때 분명 너는 나와 눈을 맞추며 태양처럼 웃었지.

 

 운명과도 같았던 너와의 만남은 나의 모든 걸 바꿔놓았다. 나는 모은 돈을 털어서 네 CD들을 사기 시작했고 학교를 빠져가면서 네가 서는 모든 무대들을 보러 다녔다. 너 같이 예쁜 아이에게 어느 학교를 가도 몇 명 쯤 있을 것 같은 두꺼운 알의 안경을 쓴 나 따위는 어울리지 않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운동을 했다. 그래서 벌벌 떨면서도 안경을 벗고 렌즈를 끼는 연습을 했다. 단순히 네 앞의 관객석에 있는 사람 중 한 사람이 아닌, 네 옆에 있을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어서 열심히 운동하며 나를 가꿨다. 그러는 사이에 웬일인지 여자아이들에게 많은 고백을 받게 됐지만 나에겐 이미 네가 있었기 때문에 어느 고백도 내 눈과 귀엔 들어오지 않았다. 네가 다니는 행사들에 참여하고 네가 홍보하는 물건들을 하나 하나 모으며 너와의 추억을 쌓았다. 물론 그만큼 성적은 계속 떨어졌고, 부모님께 야단 맞는 날의 연속이었지만 나는 그 어느 때보다 행복했다.

 

 그러던 네가 고등학교에 올라간 후 언젠가부터 네 무대를 보러 오는 교복 입은 남자애들이 있었다. 그 애들은 네가 다니는 학교의 교복을 입고 있었고, 무대를 마치고서 사복으로 갈아입은 너는 그 녀석들과 잘 아는 사이라도 되는 듯 얘기를 나누곤 하는 걸 몇 번이고 보게 됐다. 나는 평소에 너를 보기 위해선 학교가 끝나자마자 서둘러 학교를 나와 네가 다니는 학교가 있는 지역에 가기 위해 전철과 버스를 타야만 했다. 그렇게 서둘렀음에도 너를 볼 수 없는 날도 꽤 많았다. 하지만 너는 내가 온 줄도 모르고 그 같은 학교의 세 녀석들과 나를 지나쳐가곤 했다.

 

 내 존재를 가장 먼저 눈치챈 것은 안타깝게도 네가 아닌 파마머리 놈이었다. 몇 번인가 눈이 마주칠 때마다 그는 알 수 없는 묘한 표정을 지었고 그러다 어느 날인가부터는 다른 두 녀석들도 나를 경계하기 시작했다. 기사들에 보호를 받는 공주님처럼 너만, 너만이 나의 존재를 눈치채지 못했다.

 

 역시 태양 가까이에 다가가는 것은 너무나 어려운 일이었다. 그냥 잘생겨지는 것만으로는 네 곁에 설 자격이 충분치 못했던 것 같았다. 그래서 너에 걸맞게, 나 역시 멋진 아이돌이 되자고 생각했다. 그러면 너와 자연스럽게 얘기도 나누고 함께 할 수 있을 테니까.

 

 하지만 어느 날 태양은 자취를 감춰버렸다. 태양의 주변을 맴돌던 녀석들도 네가 어디로 사라졌는지 모르는 눈치였다. 다른 귀여운 아이돌들을 가까이서 볼 수 있는 것은 좋았지만 네가 없는데 내가 굳이 계속 아이돌을 해야 하는 것인가 싶었다. 모든 것이 시간 낭비처럼 느껴졌다. 그 시간에 차라리 네 무대 영상을 반복해서 보는 편이 훨씬 나을 거라는 생각에 정말로 그만두려고 했었다. 하지만 그만둔다는 내 말에 곰사장이 들려준 것은 네가 조만간 프로듀서로서 복귀할 것이라는 것이었다. 그때, 새롭게 나는 꿈을 찾았다. 더 이상 네가 빛나는 조명 아래에서 노래하는 것을 들을 수는 없지만, 대신에 네게 길러지는 아이돌이 되면 되는 것이다. 네가 사랑으로 키워내는 너의, 아이돌.....................................

 

 화가 나게도 사장은 너를 금방 만나게 해주지 않았다. 그래서 너와 마주하지도 못한 채 오늘까지 왔다. 가끔은 선글라스와 마스크를 벗고 네 앞에 섰지만 너는 나를 알아보지 못했다. 네가 나를 지나쳐 가는 방향엔 네가 사랑하는 다른 아이츄들이 있었다. 어째서 네가 웃어주는 것이 내가 아닐까. 하지만 그것도 오늘까지다. 오늘까지.

 



 오늘은 우리가 처음 만난 지 4000. 그리고 네가 마침내 나의 프로듀서가 되는 날이기도 하다. 우리는 역시 운명이 아닐까, 나의 프로듀서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