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타유즈]
조연의 역할
W. 소담(@kimiga_iru)
누군가 사람은 모두 자기 인생의 주인공이라고 말했다. 틀린 말은 아니다. 하지만 주인공인 개인들이 모인 상황에선 모두가 주인공이 될 순 없는 법이다. 필연적으로 누군가가 주인공이면 또다른 누군가는 조연이 될 수밖에 없다.
"오늘 기분 좋아 보이네, 윳쨩."
"응?"
어딘가 들떠보이는 얼굴로 콧노래까지 부르며 수업 때 쓸 자료를 미리 꺼내 정리하는 유즈키에게 묻자 그녀는 지금까지 자신이 하고 있던 행동에 자각이 없었던 건지 짧게 되물으며 이쪽을 돌아봤다. 정말 아무것도 모르겠단 눈이었다.
"콧노래 말이야, 콧노래~"
"콧노래? 내가 콧노래 불렀어? 미안. 시끄러웠지?"
이제야 자신이 무의식 중이 한 행동을 깨달은 그녀는 무안한지 귀 옆의 뺨을 검지 손가락으로 긁었다. 만화에서나 나올 법한 표현이었지만 어쩐지 유즈키에겐 잘 어울렸다.
"딱히 시끄럽다거나 한 건 아닌데. 윳쨩의 목소리, 예쁘니까."
그렇게 얘기하자 예상대로 유즈키는 쑥스러운 듯 소리내 웃더니 다시 하던 일을 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내 말을 의식한 듯 한 동안 조용하던 그녀는 얼마 못가서 다시 소리내어 흥얼거리기 시작했다. 그녀가 얼마나 들떠있는지 모른 척 하고 싶어도 알 수밖에 없었다.
"윳쨔앙~ 초콜릿은?"
"...! 어떻게 알았어? 초콜릿은 수업 끝나고 다 같이 저녁 먹을 때 줄게."
초콜릿은 안 주냐고 보채는 말을 예상하지 못한 건지 유즈키는 날 신기한 걸 바라보는 눈으로 쳐다봤다. 모를리가. 이렇게나 네게서 초콜릿 향이 진동하는데.
일반적으로 여주인공과 이루어지는 것은 남자 주인공의 특권이다. 그래서 여주인공의 선택을 받지 못한 남자 등장인물은 자연히 조연의 자리로 밀려나게 된다. 아니, 어쩌면 처음부터 남자 주인공과 조연은 정해져 있는지도 모른다. 단지 등장인물들이 모르고 있을 뿐.
수업 후 넷이서 식사를 하러 온 곳은 발렌타인 데이의 달콤한 분위기와는 거리가 먼 평범한 중식당이었다. 각자 취향껏 음식을 시키고서 언제나처럼 떠드는데 주섬주섬 유즈키가 무언가를 꺼냈다. 이 자리의 모두가 예상하고 있은 그것, 초콜릿이었다. 유즈키는 유치원의 아이들에게 간식을 배분해주는 것처럼 우리에게 자신이 직접 만들었을 초콜릿을 나눠줬다.
"자 이건 타카미치 군 꺼, 이건 후타미 군 꺼... 그리고 이건 잇세이 군 꺼!"
그녀는 알고 있을까, 마지막에 가서 한톤 높아진 자신의 목소리를?
"해피 발렌타인! 열심히 만들어 봤으니까 맛은 그냥 넘어가 줘!"
말은 그렇게 하면서도 그녀는 자신이 만든 초콜릿을 어서 먹으라고 재촉하듯 우리를 번갈아 봤다. 채근에 못 이긴 척 입 안에 집어넣은 초콜릿 한 알은 냄새만큼이나 달콤했다.
"어때?"
그렇게 물으며 유즈키는 어느 한 쪽을 바라봤다. 내색하지 않으려는 그녀의 생각과 달리 그녀의 몸은 솔직하게 그녀에게 가장 중요할 대답을 해줄 사람을 향해 틀어진다. 강한 인상의 그가 피식 웃으며 맛있다고 하면 비로소 그녀는 안심한듯 숨을 길게 내쉰다.
주인공에게는 주인공의 역할, 조연에게는 조연의 역할이 있는 법이다. 주인공들의 사이의 갈등을 극대화 시켜 결국에는 의도와 다르게 그들의 사이를 더욱 공고히 해주는 조연과 그들의 곁에서 한결같이 그들을 응원하고 도와주는 조연. 그리고 나는 후자를 선택했다. 그렇게 하면 주인공과의 우정도, 조연의 이루지 못하는 사랑도 유지할 수 있으니까.
조연1은 남자 주인공의 초콜릿이 더 잘 만들어진 것 같다며 혹시 그게 진심이 담긴 초코 아니냐며 두 사람 사이를 바람 잡아주며 하나 남은 초콜릿을 마저 입에 털어넣었다. 달고 씁쓸한 맛이 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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