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너한테만 서툴지, 다른 건 다, 네가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교활하고 능숙해. 그건 네가 안 봤으면 좋겠어."


- 드라마, 밀회 中 -








 의자에 앉은 채 에이치에게 자신의 머리를 온전히 맡기고 있던 안즈의 입꼬리가 슬며시 올라갔다. 등 뒤에 있어 그녀의 얼굴이 안 보이는 것이 분명함에도 어떻게 알았는지 에이치는 그녀의 그 작은 변화까지도 당연한 듯 눈치챘다.


"왜?"


 다정한 목소리가 안즈에게 물어왔다. 올라간 입꼬리를 억지로 끌어내리며 위아래 입술을 겹쳐 입을 앙 다물고 있던 안즈는 참아왔던 즐거움을 토해내 듯작게 쿡쿡 거리며 "아니에요." 하고 답했다. 하지만 역시나 늘 그렇듯 "말해 봐." 하고 상냥한 목소리로 그가 그녀를 채근했다. 언제나 그랬다. 그는 그녀의 작은 것들까지도 전부 알고 싶어 했기 때문에 이런 상황의 끝은 늘 안즈가 삼켰던 말을 꺼내는 것으로 마무리 지어지곤 했다. "별 거 아닌데." 하고 운을 뗀 안즈는 자신의 머리카락을 열심히 그러모으고 있는 그를 살짝 돌아보며 말을 이었다.


"에이치 선배는 뭐든 완벽한데 의외로 이런 사소한 건 서투네요."


 그녀가 곱게 휜 눈과 부드러운 음성으로 하는 말이 지적이 아니란 건 파악했지만 그 말의 명확한 뜻을 이해하지 못해 에이치는 그녀에게 되물었다.


"이런?"

"머리 묶기 같은 거요."


 안즈의 대답을 들은 에이치는 그녀를 따라 쿡쿡하고 소리내어 웃었다.


"그치만 난 남자고 머리도 길지 않아서 머리를 묶어볼 일이 좀처럼 없는 걸. 그리고..."


 에이치는 뜸을 들이듯 말을 끊은 후, 자신의 손목에 끼고 있던 안즈의 머리끈을 손목 밖으로 끌어내 그녀의 머리를 한 갈래의 포니테일로 묶어주며 말했다.


"안즈. 난 네게만 서툴지, 다른 건 다, 전부... 너도 모르진 않겠지만 아마 네가 알고 있는 것, 네가 상상하고 있는 것보다도 훨씬 더, 그러니까, 네가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난, 많이 교활하고 능숙해."


 몸을 앞으로 살짝 숙인 것인지 귓가에서 속삭이듯 들려오는 다정한 목소리는 그 이상의 무언가가 녹아 있어서 마치 그녀가 전학 와서 혁명이라는 소용돌이에 휘말려 대면했던 '유메노사키의 황제 텐쇼인 에이치'를 떠올리게 했다. 묘하게 긴장하게 만드는 그 목소리에 안즈는 고개를 돌려 그를 쳐다보려 했으나 그는 그녀가 그럴 것이라는 걸 이미 예상했었는지, 그녀의 관자놀이 부근을 가볍게 잡아 그녀의 머리를 똑바로 고정시켰다.


"안돼, 돌아보지 마 안즈. 그런 모습은, 너만은 보지 않았으면 하니까."


 안즈는 얌전히 고개를 끄덕이며 자신이 하고 싶었던 말을 목구멍 안쪽으로 꾹 눌러삼켰다. 그녀 역시 그에게만큼은, 그를 만나며 그녀의 안에 어느샌가 싹 튼 검은 마음과 집착에 얼룩진 모습이 아닌, 귀엽고 믿음직하고 사랑스러운 모습만 보이고 싶었기에. 물론 그는 상상조차 하지 못하고 있을 테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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같은 대사를 가지고 로제(@tofu_rose_)님께서 쓰신 레이안즈는 이쪽 ↓↓↓



https://www.evernote.com/shard/s213/sh/d6c00d94-eef8-45ec-945f-fc0968a5a952/ac76ec59b7cbada0c5bb2f859d5cb2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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