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보컬로이드 곡인 <Acute>와 <React>의 가사를 바탕으로 각색하여 쓰여진 연성입니다.
* 내용을 짤 때 けったろ(켓타로) & Φ串Φ(쿠시) & ベェェェェジュ(베쥬), 세 분이 부른 Acute -Reverse-를 참고했습니다.
[리츠안즈레이/리츠안즈이즈]
돌이킬 수 없는 < 1 >
W. 소담(@kimiga_iru)
땅거미가 안개처럼 내려앉은 학교는 대부분의 학생이 하교를 한 탓에 낮 시간대의 시끌벅적함을 상상하기 어려울 만큼 적막했다. 언뜻 보면 아무도 없는 것같이 고요한 스튜디오엔 천장에 설치된 온풍기가 작동하는 소리와 연필의 사각거리는 소리만이 어렴풋이 들려올 뿐이었다.
"...안즈."
적막을 깬 것은 소리를 낸지 한참은 된 것처럼 평소보다 낮게 가라앉은 리츠의 목소리였다. 리츠는 깨어난 그를 눈치채지 못한 채 오로지 기획서에만 눈길을 주고 있는 안즈를 한참을 멍하니 쳐다보다 그녀의 온기를 찾기라도 하는 것처럼 그녀의 이름을 불렀다. 검은 글씨가 빼곡할 하얀 종이에만 머물던 시선이 그를 마주하자 그는 여전히 누운 채로 몸을 움직여 그녀의 무릎에 자신의 머리를 얹었다.
"무릎베개..~"
"응."
조금 전까지만 해도 버릇처럼 미간을 찡그리고 있던 얼굴에 그녀의 이름을 닮은 미소가 피어났다. 리츠는 가만히 그것을 바라보다 고개를 돌려 그녀의 품으로 파고들며 어리광을 부리듯 말했다.
"안즈가, 형님이랑 친한 거...... 싫어. 기분 나빠."
혼잣말처럼 중얼거린 그 말은 혼잣말이라 하기엔 너무 컸다. 마치 그녀가 듣길 바라는 것처럼.
"하지만 난 모두를 돕는 게 일인 프로듀서니까."
"응...... 알고 있어."
리츠는 굳이 쳐다보지 않아도 그녀가 곤란한 듯 잔뜩 처진 눈으로 어색하게 웃고 있을 것이란 걸 알 수 있었다. 그가 그의 형인 레이와 안즈가 가까이 지내는 것을 질투할 때면 늘 그녀가 짓는 표정이었다. 마치 그녀가 "어쩔 수 없는 걸" 하고 말하는 것 같아서 리츠는 그녀의 그 표정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그녀가 형에게 호감을 갖고 있다는 걸 알고 있었기 때문에 더더욱.
리츠는, 안즈는 나만 바라보면 돼, 라는 말을 침과 함께 꼴깍 삼켰다. 조금 씁쓸한 맛이 느껴지는 건 자꾸만 일그러져 가는 이 마음 때문이리라. 리츠는 눈을 꼭 감고 끌어안은 그녀의 체취를 깊게 들이마셨다. 그녀의 달콤한 체취에 흐릿하게 낯설지 않은 체취가 났다. 이 불쾌한 잡내없이, 안즈의 달콤한 체취 전부가 나만을 위해 있다면... 리츠는 조금 더 안즈를 바짝 끌어안았다.
안즈는 자신의 품에 고개를 파묻은 리츠를 내려다봤다. 그의 얼굴이 보이지 않아 그가 어떤 표정을 짓고 있는지 그녀로선 알 수가 없었다. 다만 자신의 허리를 더 꽉 끌어안는 그의 행동에 상상만 할 뿐. 안즈는 몇 개월 전부터의 갈수록 악화되어가는 이 상황이 버거웠다. 그녀는 교내의 아이돌들 중 몇몇이 자신을 친구나 선후배 이상의 눈으로 바라보는 것을 언젠가부터 눈치채고 있었다. 하지만 그녀는 자신의 입장에 충실하고 싶었기에 그 감정들을 눈치채지 못한 척 해왔다. 모든 걸 받아주는 듯 하면서도 정작 연심은 눈치 못 챈 사람처럼 자연스럽게 거절하는 그녀의 태도에 그녀의 거절 의사를 알아챈 대부분의 아이돌들은 어느 순간부터 알아서 좋아하는 내색을 하지 않았다. 사쿠마 형제만 제외 한다면.
형인 레이는 그녀에 대한 호감을 은근슬쩍 드러내곤 했다. 본인이 무언가를 할 때 그녀를 곁에 둔다거나 그녀가 할 일을 할 때 그녀의 곁에 머무는 식으로 그는 그녀에 대한 감정을 내비쳤다. 호감을 노골적으로 드러내는 것은 동생인 리츠 쪽이었다. 안즈는 처음엔 그가 자신에게 연애 상대로서 호감을 갖고 있다는 걸 몰랐다. 다른 사람들이 바보 같다고 할지도 모르지만, 그녀로서는 눈치채기가 어려웠다. 그는 그녀에게 마음을 연 후부터는 줄곧 무릎베개를 해달라고 조르거나 피를 달라고 조르는 등, 늘 어리광을 부려왔기 때문이다. 그녀는 그의 마음을 깨달은 후에 그가 자신에게 내비치는 진심을 에둘러 거절했다. 눈치가 제법 좋은 그는 그 완곡한 거절을 빠르게 알아채곤 한 발 물러나 자신이 안즈에 대한 사랑을 깨닫기 전처럼 그녀를 대했다. 적어도 그녀가 레이에게 호감을 갖고 있단 걸 눈치채기 전까진.
안즈는 리츠의 형인 레이에게 선후배 이상의 호감을 갖고 있었다. 그 감정의 시작이 언제부터 였는진 그녀 자신도 알지 못했다. 호감을 드러내면서도 아슬아슬하게 선을 넘어오지 않는 그의 태도가 그를 더 궁금하게 만들고 그녀를 안달나게 만들었는지도 모른다. 아니, 어쩌면 전부 핑계고 그냥, 그에게 끌렸을지도. 누구라도 돌아볼 것 같은 수려한 외모의 그는 행동 하나하나가 우아하고 무게있는 기품이 넘쳤다. 그럼에도 그는 무대 위에선 전혀 다른 사람 같았다. 언젠가 한 번 무대 아래에서 그가 속한 UNDEAD의 무대를 지켜본 적이 있었다. 그때 마주쳤던 그의 눈빛을 안즈는 아직까지도 잊을 수가 없었다. 평소에도 그의 눈은 묘한 색기를 품고 있었지만 그때 안즈를 바라보던 눈은 욕망을 있는 그대로 표출하는 것 같은, 그런 눈이었다.
'아가씨를 원해.'
그때 부딪쳤던 그의 시선에서 읽었던 것은 단지 그녀의 착각이었을까, 안즈는 궁금했다. 물론 완전한 착각은 아닐 거라는 건 그녀도 짐작하고 있다. 그럼에도 그녀는 자신이 지키고 싶은 선 때문에 그에게도 일정의 거리를 뒀다. 하지만 그녀의 이런 노력을 아는지 모르는지, 리츠는 안즈가 자신의 형에게 마음이 있다는 걸 알아챈 이후론 이전보다 훨씬 더, 그녀에게 어리광을 부리고 집착하기 시작했다. 다만, 그만의 룰인지, 안즈에게 직접적으로 레이를 좋아하는지는 묻지 않았다. 그래서 안즈도 굳이 그에게 자신이 누구에게 호감을 갖고 있는지 얘기하지 않았다. 어차피, 적어도 졸업 전까지는 레이와 이 이상의 관계 발전은 없을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레이 선배...'
자신을 꽉 끌어안는 리츠를 바라보던 안즈는 가만히 고개를 들어올려 다시 기획서를 쳐다봤다. 마치 안즈가 어디 사라지기라도 할까, 그녀의 허리를 힘껏 끌어안고 있는 것에서 느껴지는 그의 집착과 다리에 느껴지는 그의 무게는, 아이러니하게도, 그의 형인 레이를 떠올리게 했다. 기획서의 그 어느 문장에도 제대로 시선이 머물지 못하고 있던 때 그녀의 고개를 무언가가 옆으로 돌렸다. 갑작스레 뺨에 느껴진 온기에 화들짝 놀라며 정신을 차린 그녀의 눈앞엔 조금 전까지만 해도 그녀의 품에 파고 들던 그의 얼굴이 있었다. 아련하게 흔들리면서도 분노가 엿보이는 눈. 안즈는 위험하다고 느꼈다.
"형님 생각, 그만해. ......지금 같이 있는 건 나잖아."
지금까지완 달리 노골적으로 감정을 드러내는 그의 언동에 상황의 심각성을 깨달은 안즈는 고개를 뒤로 빼려고 했지만 그의 손이 그녀의 뒷머리를 손바닥으로 감싸 그 쪽으로 끌어당겼다. 퇴로가 막힌 그녀에게 그의 얼굴이 더욱 가까이 다가왔다. 그녀는 질끈 눈을 감았고, 바로 다음 순간 그녀의 입술에 그의 입술이 맞닿았다. 짧은 시간 맞댄 채 포개져 있던 입술을 그가 소리없이 떼어냈다. 천천히 감았던 눈을 뜬 안즈의 눈에 들어온 건 지근거리에서 그녀를 응시하고 있는 리츠의 석류처럼 빨간 눈이었다. 안즈는 그와 그녀 사이에 애매하게 끼어있던 자신을 팔을 움직여 그를 밀어내려 했다. 하지만 붉은 빛의 그의 눈엔, 창밖을 까맣게 물든 어둠처럼, 이제 막 족쇄에서 벗어난 욕망이 일렁이고 있었다. 다시 한 번 그의 얼굴이 다가왔다 쪽 소리를 내며 떨어졌다. 하지만 이내 그는 다시 그녀에게 키스했다. 안즈는 여태껏 단 한 번도 해본 적 없는, 그녀가 늘 어른들의 키스라고 생각해왔던, 그런 키스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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