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색의 코르다, 츠치우라 료타로 × 히노 카호코
2009.02.16 작성.
이때도 발렌타인 데이가 이틀이나 지나고 나서 기념일 관련 연성을 올리는 뻔뻔한 사람이었다. 뭐... 그럴수도 있지.
여기에 잔뜩 긴장해서 어쩔 줄 모르고 있는 고등학교 2학년의 남학생이 있다. 거울 앞에 서서 교복의 매무새를 만지고 있는 그는, 사실 그 전날 밤도 제대로 자지 못하고 밤잠을 설쳤다. 그래서인지 그의 얼굴에는 피곤이 덕지덕지 붙어있었다. 그, 츠치우라는 넥타이를 매면서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계속해서 같은 생각만을 하고 있는 자신이 바보처럼 느껴졌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의 그런 노력은 말 그대로 헛수고였다. 고개를 흔들어 잡념을 떨치려고 한지 채 몇 초도 안 되어서 그는 히노를 생각하고 만 것이다. 지금 츠치우라는 친구인 사사키가 무척 밉다.
Valentine's Day Chocolate
W. 소담(@kimiga_iru)
학교에 도착한 츠치우라는 자신의 자리에 가만히 앉아 있다가 사사키를 만나러 가자고 생각하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절대로 히노를 보러 가는 것이 아니라 사사키를 만나러 가는 것이라고 츠치우라는 몇 번이고 머리속으로 중얼거렸다. 2반 앞에 도착한 츠치우라는 괜히 쭈뼛거리며 2반 교실을 둘러본다. 히노는 없다. 사사키도 없다. 그때 누군가가 꽤나 세게 그의 등을 쳤다.
“읏, 뭐야!”
돌아보니 그와 축구부 시절 단짝처럼 지냈던 사사키였다. 츠치우라는 사사키를 노려보면서 어퍼컷을 날렸다. 뭐가 그리 웃긴지 사사키는 낄낄대면서 츠치우라의 매서운 손을 피했다.
“그보다 여긴 웬일이야?”
사사키는 벽에 기대더니 팔짱을 끼면서 츠치우라를 쳐다봤다. 아주 잠깐, 약 1초 동안 츠치우라는 자신이 왜 사사키를 찾아왔는지 생각해봤다. 어제 사사키가 했던 말이 신경 쓰여서라고 어떻게 말하겠는가. 챙겨온 수학 교과서를 빌리러 왔다고 거짓말을 하려고 입을 여는데, 어떤 여자애가 다가왔다.
“사사키군 여기 있었구나! 여기 발랜타인 데이 초콜릿~. 직접 만든 거니까 모양은 애교로 봐줘~”
“오오 아이카와, 이거 나 주는 거야? 감동이다 감동. 고마워!”
사사키는 아이카와라고 하는 여자아이가 멀어질 때까지 손을 흔들더니 자신의 손에 들린 초콜릿 상자를 물끄러미 쳐다봤다. 그러더니 상자를 열어 초콜릿 하나를 집어서 자신의 입에 넣었다. 사사키는 ‘으음’ 하고 초콜릿을 음미하더니 츠치우라를 흘깃 쳐다봤다.
“봤냐? 이 몸의 인기?”
“하? 아이카와인가 하는 애가 착해서 불쌍한 사사키군에게 주는 우정의 초콜릿이?”
사사키는 ‘흐응~’하고 츠치우라를 옆눈으로 쳐다보더니 츠치우라의 주변을 한 바퀴 느릿느릿 돌면서 츠치우라의 약을 올리기 시작했다.
“오오 그래? 그러면 츠치우라는 우정의 초콜릿을 얼마나 받았을라나~ 아 그러고 보니 우리 반에는 히노를 찾으러 온 거지?”
“그…그런 거 아니야!”
“아니긴 뭘…. 그런데 어쩐다~ 아까 보니 히노는 어떤 가방 들고서 어디 가던데~ 그 가방에 초콜릿이 들어있는 건 아니려나~ 아! 어쩌면 음악과에 간걸지도~ 다른 콩쿠르 멤버들과 똑같은 우정 초콜릿이더라도 같은 건물에 있으면서 먼저 받지도 못하고… 불쌍해서 어쩐다~”
사사키가 자꾸 놀려대자 츠치우라는 속이 부글부글 끌었다. 사실 화가 난 것은 자기 자신과 히노에게 였다. 꼴사납게 히노가 초콜릿을 주러 오기를 기다리지 못하고 그녀의 반까지 찾아오다니. 정말 창피하다, 츠치우라!! 츠치우라는 히노의 자리를 흘끗 쳐다보며 그녀를 원망했다. 자신과 그녀의 교실은 음악과보다는 훨씬 가까운 거리인데도 음악과의 그들부터 챙기다니.
종이 울리는 소리에 아쉬움을 뒤로한 채 츠치우라는 자신의 교실로 돌아왔다. 이상하게 오늘따라 수업이 귀에 들어오지 않는다. 이쯤 되면 중증인거다. 츠치우라는 자신이 히노를 좋아하는 것이라고 인정했다. 어제 사사키는 오늘이 발랜타인 데이라며 히노가 츠치우라를 어찌 생각하는지 알 수 있는 기회라면서 괜히 그의 마음을 어지럽혀 놨다. 덕분에 어제부터 그의 머릿속은 히노의 초콜릿으로 가득하다.
“……하아. 마음을 깨닫자마자 차이는 건가.”
어제 저녁부터 머릿속에 히노와 초콜릿이 둥둥 떠다녔던 탓에 츠치우라는 실수로 싸놓은 도시락을 가져오지 않았다. 그는 자신이 도시락을 집에 두고 왔다는 사실마저 점심시간이 되어서야 깨달았다. 어쩔 수 없지만 매점에서 빵과 우유라도 사먹어야겠다고 생각하며 츠치우라는 교실을 나왔다. 매점에는 역시나 사람이 붐볐다. 평소에도 그렇게 느끼지 않았던 것은 아니지만 실제로 빵과 우유를 사야 되는 처지가 되고 보니, 점심시간의 매점이 전쟁터라는 것이 느껴졌다.
“아앗 츠치우라~ 웬일로 매점에 있는 거야?”
“아. 도시락 가져오는 것을 잊어서 오늘은 매점 빵으로 때우려고요.”
히하라는 입을 우물거리며 고개를 끄덕였다. 보아하니 그는 이미 카츠샌드를 끝낸 모양이었다. 역시나 3년간 매점에 단련된 사람은 다르다고 느끼며, 츠치우라는 무심코 히하라의 손을 쳐다봤다. 그의 손에는 연보라 빛의 상자가 들려 있었다.
“그건…. 친구들에게 받은 겁니까?”
“응? 아아~ 카호짱이 줬어! 츠치우라도 받았지?”
츠치우라는 ‘아아’ 하고 한숨을 쉬더니 히하라의 손에 들려 있는 상자를 살짝 뺏어 들었다. 열어보니 앙증맞은 초콜릿들이 가지런히 정리 되어있었다. 초콜릿을 보고 나니 다시 한 번 한숨이 나왔다.
점심시간에 식사를 모두 마친 후 사사키와 축구라도 하며 초콜릿에 대한 생각 따위는 모두 잊어야겠다는 생각을 하며 사사키를 찾아 나섰다.
“앗!”
너무 성큼성큼 걸었던 탓인지 누군가와 부딪혀버렸다. 상대가 자신의 가슴팍에 머리를 부딪히는 바람에 가슴팍이 살짝 욱신거렸다. 어쨌든 제대로 앞을 보지 않으며 걸은 본인의 책임도 있었기에 츠치우라는 사과를 하기 위해 상대를 내려다보았다.
“아앗 츠…츠치우라 군-?!”
“아아 히노…”
츠치우라는 히노를 훑어보았다. 그녀의 손에는 천으로 된 가방이 들려있었다. 저것이 아마도 사사키가 말한 초콜릿 상자가 들어있는 가방인 모양이다. 눈을 떼려고 했지만 그게 어디 쉽겠는가. 히노는 츠치우라의 시선을 느꼈는지 가방을 들고 있는 손을 스윽 자신의 뒤로 감췄다.
“하하… 츠치우라군. 나 바빠서 이만 가볼게!”
히노는 츠치우라를 쳐다보지 않은 채, 스님이 염불을 외우듯 중얼거리더니 자신이 가고있던 방향으로부터 몸을 틀어 반대 방향으로 달려갔다.
“츠치우라 료타로 18세, 발랜타인 데이에 순정에 금이 가다~”
“사사키, 너 이 자식!!”
츠치우라는 괜히 사사키에게 화를 냈다. 마음이 싱숭생숭해서인지 축구도 잘 되지 않았다. 같은 편이 보내준 골에 맞기도 했고, 상대편에게 공을 패스하기도 했다. 사사키에게는 웃기지 말라며 무슨 소리냐고 정색을 했지만, 솔직히 말해서 충격이었다. 히노는 명백히 츠치우라를 피했다. 다른 콩쿠르 멤버들에게는 초콜릿을 주는 것 같은데 어째서 자신은 피하는 것일까. 축구를 하는 내내 츠치우라는 자신이 최근에 히노에게 잘못한 것이 없는지 떠올려 봤다. 그러나 아무리 생각해봐도 떠오르지 않았다.
다음 쉬는 시간에 낙담하여 책상에 엎드려 있는데 앞자리의 모토미야가 오더니 그를 툭툭 건드렸다.
“츠치우라군. 츠치우라군을 찾는 사람이 있어.”
츠치우라는 자신을 찾는 사람이 히노이길 바랐다. 아주 조금…이 아니라 사실은 엄청 많이. 그러나 기대를 저버리고 복도에서 자신을 기다리고 있는 사람은 음악과 후배인 후유우미였다. 그의 바람은 여지없이 무너져버렸지만, 엄청나게 내성적인데다가 남자기피증이 있는 후유우미가 자신을 찾아온 것은 예상 외였다. 왜냐하면 후유우미는 이상하게도 그를 무서워했기 때문에.
“아 어 저기…이거 발랜타인 데이 초…초콜릿인데요.”
이것이 말로만 듣던 ‘우정 초콜릿’인가. 애초에 후유우미가 자신을 찾아와 초콜릿을 주리라고 생각하지 못했기 때문에 그리고 히노가 자신을 피해 버려서 받은 상처 때문인지, 후유우미가 주는 초콜릿이 무척 고맙게 느껴졌다.
“어…저기.츠치우라 선배는 오늘도 음악실에서 연습하시나요?”
“…하아? 아. 이미 2연습실을 예약해뒀어.”
“아아. 그렇군요. 잘 알겠습니다. 저…저는 이만….”
후유우미는 꾸벅 인사를 하더니 허둥대며 계단을 향해 가버렸다. 그녀에게 이야기했듯 츠치우라는 방과 후에 피아노를 연습할 것이다. 아침부터 미리 연습실을 예약해두었다. 그러나 과연 오늘 제대로 연습에 집중할 수 있을런지 본인도 걱정이 되었다.
“…제길.”
담임의 종례가 끝나고 혹시나 하는 마음에 일부러 2반 앞을 지나 음악과 쪽으로 향했다. 그러나 실망스럽게도 이미 히노는 하교를 한 모양이었다. 2반에는 청소 당번인 것 같은 남학생 둘과 여학생 둘만 있을 뿐이었고, 히노의 책상은 텅 비어 있었다.
터덜 터덜 음악과 건물로 무거운 발걸음을 옮겼다. 만약 그녀가 학교에 아직 있다면 그녀에게서 초콜릿을 받을 수 있다는 기대를 아주 조금이라도 가져볼만 하지만 그녀가 이미 하교를 해버렸다면 그야말로 게임 오버인 셈이다.
“…하아. 정말이지 꼴사납게 하루 종일 이게 뭐래.”
연습실을 향해 걸어가며 머리를 힘껏 헝클어트렸다. 그가 복도의 모서리를 꺾어 돌자 누군가가 달려가는 소리가 들려왔다. 츠치우라는 2연습실의 문을 열었다. 그는 문을 열며 왜 자신이 하필이면 2연습실을 예약해둔 것인지를 후회했다. 2연습실은 히노의 바이올린 반주를 해준 적이 있는 곳이었다. 한숨을 푹푹 내쉬면서 가방을 바닥에 아무렇게나 던져뒀다. 원래는 오늘 좀 더 어려운 곡을 연습하려고 했었지만, 어쩔 수 없다. 츠치우라는 오늘의 연습곡으로 베토벤의 ‘폭풍’을 정했다.
연습실을 마지막으로 썼던 사람이 정리했는지 피아노 의자는 피아노의 안쪽에 넣어져 있었다. 츠치우라는 피아노 의자를 거칠게 잡아당겼다. ‘퍽’하고 무언가가 의자로부터 떨어졌다. 그것은 연분홍 빛의 상자.
“…? 뭐지.”
츠치우라는 그 상자의 뚜껑을 열어보았다. 눈에 가장 먼저 보인 것은 상자 크기에 딱 들어맞는 편지. 하지만 접혀 있어서 그 내용과 편지를 쓴 사람이 누구인지는 보이지 않았다. 츠치우라는 코를 킁킁댔다. 상자를 여는 순간 정체를 알 수 없는 약간의 탄내가 났기 때문이다. 아무래도 상자 속의 내용물에서 나는 냄새인 듯 했기에, 츠치우라는 상자에서 편지를 조심스레 꺼내보았다. 역시나 탄내는 상자 속 내용물의 것이었다. 상자에는 초콜릿이 될 예정이었던 것으로 추정되는 것들이 어지럽게 널려 있었다. 비록 츠치우라가 의자에서 상자를 떨어트린 탓도 있지만, 아마도 그 이전부터 그리 가지런히 초콜릿이 정리되어 있었을 것 같지는 않았다. 츠치우라는 순간, 먹어선 안 될 것만 같아 보이는 것을 만든 사람이 처치곤란인 초콜릿을 버려두고 갔다는 생각이 들었다. 생각해보면 이 초콜릿을 받을 예정이었던 녀석도 꽤나 불쌍하다. 초콜릿의 임자가 될 뻔했던 사람을 향한 동정에는 약간의 질투심이 섞여 있긴 했지만, 츠치우라는 자신의 호기심이 시키는대로 상자 속의 편지를 펼쳐 보였다.
「 츠치우라군에게
으읏 츠치우라군. 아까는 마주치고서도 도망쳐 버려서 정말로 미안. 그치만 츠치우라군을 도저히 마주할 수가 없어서…. 이 상자의 초콜릿을 보면서 츠치우라군은 틀림없이 비웃었을 거야. 미안. 이런 초콜릿이어서 차마 줄 수가 없어서 나도 모르게 도망쳐 버렸어. 처음으로 만들어 보는 초콜릿이다보니 너무 엉망이 되어버렸네. 정말 미안. 뭔가 줘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여분으로 준비한 초콜릿이 없어서 어쩔 수 없지만 이거라도…. 절대 먹지는 마! 아마 배탈 날거야…. 잘 놔뒀다가 내년의 초콜릿과 비교해주지 않을래?
나 내년에는 예쁘고 맛있는 초콜릿을 선물할게.」
편지를 다 읽고 나니 얼굴이 달아올랐다. 그것은 슬퍼서라거나 화가 나서가 아니었다. 너무나 기쁜 나머지 생긴 미열이었다. 이 연분홍 빛의 상자의 주인은 츠치우라 자신이었다. 방금 전까지만 해도 이 상자를 받게 될 주인공이 불쌍하다고 생각했지만, 지금은 아니다. 이 상자를 받는 것이 자신이어서 더 없이 기뻤다. 점심시간에 매점에서 보았던 히하라 선배가 들고 있던 히노의 초콜릿은 가게에서 산 초콜릿이었던 것이다!
츠치우라는 초콜릿임에도 자신의 본분을 망각하고 단 냄새를 풍기지 않는… 히노의 초콜릿을 하나 집어서 입 속으로 밀어 넣었다. 첫맛은…썼다. 그러나 마지막의 맛은… 역시나 썼다. 초콜릿의 쓴 맛에 살짝 인상을 찌푸리는데 뭔가 부스럭 하는 소리와 함께 누군가가 ‘안 돼’ 하고 중얼거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츠치우라는 누가 있나 싶어서 창가 쪽으로 다가가 창문을 열었다. 아무도 없는 줄 알았으나 아래를 내려다보니 히노가 쭈그리고 앉아 있었다. 창문을 넘어서 밖으로 나와 풀밭에 털썩 앉아서 그녀를 쳐다보니 그녀의 눈에는 눈물을 그렁그렁 맺혀 있었다.
“츠치우라군, 내가 먹지 말랬잖아~ 으흣… 그런 거 줘서 정말 미안.”
츠치우라는 자신을 쳐다보지도 못하는 히노를 보니 ‘위험하다’라는 생각이 들었다. 앞에 있는 자신의 친구가 너무나 사랑스러워서.
“아아. 초콜릿 치고 쌉쌀한 맛이 과하긴 하더라. 그렇게 상심하지 말라고. 나는 이미 내년에 받을 초콜릿을 기대하고 있으니까.”
“으으… 정말?”
츠치우라는 자신의 손에 쏘옥 들어오는 히노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고개를 살짝 숙였다. 고개를 숙인 것은 그의 뺨에 번져버린 붉은 빛을 숨기기 위해.
“…그 전에 내가 답례를 하게 해줘. 너의 초콜릿 맛있게 먹을 수 있는 방법이 생각났으니까….”
츠치우라는 영문을 모른 채 훌쩍이고 있는 히노에게 조금 더 가까이 가더니, 그녀의 옅은 분홍색의 립글로스를 바른 입술에 키스했다. 아직 그의 입속에 남아있던 초콜릿의 강한 쌉쌀한 맛이 달게 느껴지는 순간이었다.
“…아아. 전문가가 만든 완벽한 초콜릿은 나에겐 필요 없겠다. 조금 엉성해도 좋으니 나는 이쪽 초콜릿이 더 좋달까…. 네 초콜릿, 더 달면 큰일 날 뻔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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